‘음식은 생명이다.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을 얻으려면 맑고 건강한 음식이 필요하고, 이런 음식을 얻으려면 땅과 물, 바람이 맑고 건강해야 한다.’
국내 사찰음식의 대가인 선재 스님의 제자인 선재사찰음식문화원 표복숙 원장은 선재 스님의 말을 가슴에 담아 전한다. 청원생명쌀 연구교육원에 도착하니, 향긋한 냄새가 솔솔 풍겨난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찰음식은 절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으로 육류나 어패류를 전혀 쓰지 않는 순수 채식이다. 수행에 방해가 되는 오신채(파·마늘·양파·달래·부추)를 뺀 음식이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사찰음식은 1700년 동안 맛과 영양이 뛰어난 건강 식단으로 발전해왔다. 최소한의 육신을 유지할 만큼 적당량만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선재사찰음식문화원 표복숙 원장은 “가정의 행복은 건강에서 비롯됩니다. 좋은 음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사찰음식은 최고의 웰빙 건강식입니다.”라며 “주방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은 가족을 한 자리로 불러 모읍니다. 제철에 난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건강을 담은 음식, 우엉요리
“봄에는 담과 가슴 병이 이니 떫고 매운 것을 먹고, 여름엔 풍병이 생기니 짜고 신 것을 먹어야 합니다. 가을에는 황열병이 더하니 달고 미끈한 것을 먹어야 됩니다.”
사찰음식으로 달큰한 우엉으로 음식 재료를 준비했다. 오늘 메뉴는 ‘우엉밥과 우엉잡채 그리고 우엉찹쌀구이’다. 우엉은 흔히 김밥재료에나 들어가는 음식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용되는 우엉의 쓰임새는 실로 다양하면서도 풍성하다. 표 원장은 “염증에 의한 병이 많은데 단맛이 나는 우엉을 이용하면 기혈의 순환을 도와 좋습니다.”라며 당면을 찬물에 넣고 불린다. 삶아내지 않고 찬물에 불리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당면을 삶아내면 음식이 완성되었을 때, 쉽게 불어버립니다. 찬물에 불려 볶은 우엉과 함께 물, 다시마, 간장을 넣어 끓여낸 국물에 우엉을 넣고 조리면 쫄깃한 맛과 함께 훌륭한 사찰음식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우엉과 당면이 어우러진 음식에 참기름, 후추, 볶은 풋고추와 흑임자를 넣으니 풍미가 더해진다. 수강생들은 열심히 우엉찹쌀구이와 우엉밥을 곁들여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곳에서 사찰음식 강의를 받는 박경희 씨는 “웰빙 바람 덕분에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재스님이 만드는 사찰음식을 배우고 싶었으나 멀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라며 “다행스럽게도 선재스님에게 사찰음식을 전수받은 표원장님이 강의를 시작해서 곧바로 등록해서 배우고 있다.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제철에 난 재료를 사용한 사찰음식을 배우니 깨닫는 것이 많았다. 우리 가정의 식탁에도 사찰음식을 기본으로 변화를 주었더니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온 식구들이 오히려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수강생들이 정성껏 만들어 낸 우엉밥과 우엉잡채 그리고 우엉찹쌀구이가 놓인 점심은 정갈했다. 투박한 그릇에 담긴 사찰음식은 가을 햇살아래 멋진 색감과 향기를 자랑한다. 잃었던 입맛이 저절로 돈다.
음식도 곧 도(道)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불교에서 식사(공양)를 할 때 읊는 게송이다. 이 발우(스님이 사용하는 밥그릇)공양에는 다섯 가지 공양정신이 깃들어있다. 공양도 사찰의 의식이자 수행이다. 음식이 상에 올라오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성과 공이 쌓였다. 그러므로 이를 받아, 자신의 허물에서 비롯되는 온갖 탐욕을 버리고 육신에 바른 생각이 깃들도록 음식을 약으로 삼아 도를 이루기 위해 몸을 낮추어 먹겠다는 의미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우엉구이를 입에 넣으니 묘한 향기가 몸에 스며든다. 내 몸이 그대로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단출한 식단이지만, 영양이 골고루 배어있으니 든든하고 개운하다.
선재사찰음식문화원 표복숙 원장은 “50대 중반에 갱년기가 찾아왔어요. 삶의 의욕을 잃고 생활하다 문득 불교방송에서 선재스님이 사찰음식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그대로 빨려 들어갔어요.”라며 “때마침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자막을 보고 즉시 전화를 했지요. 3개월을 기다린 끝에 수강을 할 수 있었어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배우고 익혔습니다. 음식도 중요하지만, 음식에 깃든 마음과 치열한 수행의 결기를 깨달은 것이 더 소중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씨앗이 세월을 더해 열매를 맺기까지 온 우주가 힘을 쏟아야 한다. 태양은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내고, 대지는 가진 것을 양분으로 내어 놓는다. 인공이 깃들지 않은, 계절마다 순수한 자연이 내어놓은 그대로의 재료를 통해 음식을 만드니 곧 사람도 자연과 순응하는 이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