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방위군은 1950년 말 이승만 정권이 창설했다가 이듬해 8월 해산시킨 일종의 예비군으로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남자들로 구성됐다. 당시 이들이 전선에서 후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 또는 동사했으나, 희생자 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국민방위군의 수용시설과 유해 매장지 확인 작업 등을 통해 사망자 수가 약 5만~8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이날 밝혔다. 국민방위군 희생자들은 교육대 인근의 공동묘지나 야산에 임시로 매장됐으나 유가족에게 통보하는 등의 후속 조치는 없었다. 당시 국민방위군 간부들이 보급품을 횡령하는 바람에 병사들은 식량과 의복은커녕 군번조차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 과거사의 어두운 그늘이었던 ‘국민방위군 청주연대원명부’가 청주에 있는 고서수집가 남요섭씨에 의해 드러났다. 그는 30년 전 헌책방에서 구입해 보관하고 있었다.
국민방위군 청주연대
국민방위군 청주연대는 총 2,640명으로 편성되어 있다. 약 50만 명의 장정들을 51개 교육연대로 편성하여 분산 수용하였는데 청주연대는 그 중의 한 연대로 추정된다. 남요섭씨가 소장하고 있는 명부를 살펴보면, 편제는 1개 연대본부와 3개 대대, 12개 중대, 45개의 소대와 136개 분대로 되어 있다. 인원은 연대본부 18명, 제1대대 864명, 3대대 936명, 4대대 822명이며 제2대대는 청주 이외의 지역에서 편성된 것으로 예측된다.
편제 인원을 분석해보면 분대는 17명으로 분대장 1명 부분대장 1명, 대원 1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대는 소대장 1명에 부소대장 1명 하사관 3명, 분대장 4명, 부분대장 4명, 대원 6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대에는 중대장 1명, 부중대장 1명, 하사관 17명(중대하사관 5명, 소대하사관 12명), 분대장 12명, 부분대장 12명, 대원 180면으로 구성되었다. 대대는 대대장 1명, 부대대장 1명, 부관 1명, 중대장 4명, 부중대장 4명, 참모 5명, 중대장 12명, 부중대장 12명, 소대장 45명, 부소대장 45명, 하사관 210명(연재본부 하사관 10명, 중대하사관 200명), 분대장 135명, 부분대장 131명, 대원 2,033명으로 편성되었다.
방위군 사병 학력은 무학에서 중졸까지
방위군 청주연대의 연령층은 18세에서 45세까지 다양했으며 병사들의 학력은 무학에서 중졸까지가 대부분이었다. 직업은 노동, 농업, 상업, 목공, 공원, 전공, 운전기사, 교원, 공무원 등 다양했다. 중대, 대대, 연대본부의 편성인원은 직책과 이름만 기재되어 있고 자세한 인적사항은 기록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대한 청년단 간부들로 편성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주방위군 연대명단을 보면 연대장에 나성준, 부연대장에 한효현, 제1대대장에 오갑식, 제3대대장 김수명, 제4대대장 이창수로 되어 있다. 한편 방위군 사관학교는 충남 온양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1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방위군 소위로 임관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편 지난 2011년 11월 15일에는 보은 산외면 새마을공원 내에서 국민방위군, 의용경찰 전적 기념탑에서 추념식을 거행하기도 해서 국민방위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터였다. 보은군에 있는 국민방위군, 의용경찰 전적기념탑은 6·25전쟁 당시 보은군 청년들이 국민방위군, 의용경찰로 참여해 희생적인 애향·애국정신으로 공비를 토벌하고, 군민들을 보호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7년 1억500만원이 투입돼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