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의 4박자의 내림라장조에 보통빠르기로 되어 있는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의 가곡 ‘보리밭’은 우리나라 정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들이 보리밭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아마도 보리쌀과 연관된 추억과 삶이 짙게 배어있는 까닭일 것이다.
과거에 쌀밥이 부(富)의 상징이었다면, 보리밥은 가난(貧)의 상징이었다. 지난 50~60년대를 지내온 세대는 어떤 음식이든 배불리만 먹어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오죽했으면 춘궁기((春窮期))란 말이 생겨났을까. 사람들은 그 기간을 다른 말로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고갯길은 육체적으로 넘기에 힘겹지만, 보릿고개만큼 힘든 고개는 없었을 터였다. 보릿고개란 지난해 가을에 걷은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게 되던 4~5월의 춘궁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농민이 추수 때 걷은 수확물 중 소작료, 빚 또는 그 이자, 세금, 각종 비용 등을 지급하고 난 뒤 나머지 식량으로 초여름에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 버티기에는 그 양이 절대 부족했던 까닭이다.
배고픈 사람의 눈에 5월의 푸른 보리밭은 얼마나 아련한 풍경이었을까. 그런 세월에 흐르면서 과거의 가난한 음식으로 푸대접 받던 보리밥이 어느 순간 건강식으로 변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쌀밥이 지천이던 요즈음 보리밥은 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보리밥을 하는 식당은 많지만, 제대로 하는 집은 드물다. 보리밥을 제대로 하는 음식점 중 하나가 바로 금천동 ‘보리밭’이다. 점심때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들끓는다. 이 집은 보리밥도 유명하지만, 알탕도 맛있기로 소문났다.
“보리밥은 말할 것도 없고, 알탕도 괜찮은 집이야. 알탕은 기본적으로 맛있어야 하지만, 양도 충분해야 하는데 ‘보리밭’의 알탕은 결코 후회하지 않지.”
보리밭을 안내한 동료는 이 집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보리밥을 시키자, 10가지 밑반찬이 척척 내온다. 다른 메뉴(알탕, 동태찌개 등)을 시켜도 기본 10개의 반찬은 동일하게 나온다. 맛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하찮은 음식조차도 ‘맛있다.’는 것이다.
보통 보리밥은 쌀알이 따로 노는 것과 달리 이 집은 적당한 찰기로 씹는 맛을 일부분 살렸다. 보리밥에 상추, 도라지, 나물, 무나물, 호박, 얼갈이, 참나물 등이 곁들여진다. 나물은 그때그때 조금씩 바뀐다. 제철에 맞게 내놓기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보리밥에 구수한 된장과 함께 10가지 밑반찬을 섞어 비비면 맛깔난 보리밥 완성이다.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안에 담으면 삶이 향기롭다. 온몸에 건강한 기운이 뻗치는 느낌이다. ‘제 속도로 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도심 속에 이만한 참살이 음식이 없어 보인다.
보리밭의 메뉴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기본 보리밥은 5천원, 콩나물바 5천원이다. 유명한 알탕은 1만8천원이다. 동태찌개, 새우찌개, 김치찌개도 모두 1만8천원이다. 찜류로 북어찜 2만원, 대구뽈찜 2만5천원, 아구찜 3만원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1만원하는 파전도 인기다. 영업시간은 밤 10시까지다.
-보리밭 / 043)222-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