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집의 분위기에 포장마차의 가격으로 먹는다면 이보다 더 만족할 수가 없다. 기존의 일식집은 손님 접대를 목적으로 화려한 인테리어와 고급 음식의 이미지와 맛을 추구하다보니 가격대비 음식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실속 있게 회를 곁들여 술 한 잔이 생각나면 ‘회를 파는 포장마차’를 선호한다.
그럴 때 일식집의 고급스러움과 포장마차의 실속이 만난다면 어떨까. 산남동에 위치한 <회 뜨는 쉐프> 신윤성 대표는 일식의 고급스러움에 실속의 포장마차 가격을 추구한다. 신윤성 대표는 “25년 동안 일식집을 3군데 운영해왔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이제는 고객에게 좋은 분위기와 재료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모시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늦은 밤, 찾은 ‘회 뜨는 쉐프’의 외관은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 않았다. 내부는 1개의 룸이 홀과 잇닿아 정겹기 까지 했다. 매장 홀에는 이미 술 한 잔을 곁들인 고객 몇몇이 오늘 벌어진 골프이야기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깊은 숙성회의 맛
“맛이 다른 걸?”
둥근 접시에 담긴 여섯 덩어리의 회들은 푸른 숲 같은 무순과 이름 모를 야채에 섞여 먹음직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두툼한 회 한 점을 먹고 난 뒤, R(개신동?52)씨는 “쫄깃함이 좋다. 같은 도미 회라도 감칠맛이 다르다.”라며 반색을 한다.
거기에는 숙성의 비밀이 숨겨있었다. 신 대표는 “고객들의 입맛은 실로 다양하다. 활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숙성된 회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별한 주문이 없으면 우리는 숙성회를 낸다.”라고 한다.
활어회와 숙성회는 엄연히 다르다. 활어회는 살아 있는 물고기를 바로 잡아 내장을 제거하고 먹기 좋게 포를 뜬 것으로 재빠르고 섬세한 칼질이 요구된다. 두툼하게 썰린 회가 먹기 좋다 생각하기 쉽지만 흰 살 생선의 경우 반대다. 살점이 붉은 살 생선에 비해 단단한 데다 사후경직으로 자칫 고무처럼 질겅거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흰 살 생선은 얇게, 붉은 살 생선은 두툼하게 썰어 먹는 게 좋다. 반면 숙성회는 활어를 잡아 저온에 일정 시간에 숙성을 한 후,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신 대표는 “우리의 경우, 정확하게 말하면 수조에서 살아있는 고기를 잡아 일정 시간 숙성한 후, 손님상에 낸다. 아무래도 활어회는 곧바로 잡아 회로 먹다보면 신경이 살아있어 식감이 아무래도 떨어진다. 하지만 숙성회는 잡은 뒤 1~2시간이 경과되면 ATP 분해에 따른 이노신산(IMP)가 증가되어 감칠맛 성분이 나와 식감이 좋고 회의 감칠맛이 좋다.”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메뉴 중, 특히 ‘한상 차림’은 푸짐하면서 품격이 갖춰져 만족도가 높다.
기본적으로 꽁치, 낙지회, 도미머리구이, 멍게, 해삼, 전복, 새우튀김, 회 무침, 김밥 등 기본 스끼가 깔끔하면서도 다양하다.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들이 아닌, 하나하나 손이 가는 요리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횟집에서 마무리는 개운한 매운탕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집은 황태북어국을 낸다. 처음에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맛을 보고 나면 그 시원한 맛에 고개를 절로 끄떡이게 된다.
런치정식, 1만원의 행복
“근데 이거 만원 맞아?”
<회 뜨는 쉐프>의 런치정식을 주문한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1만원하는 런치정식은 싱싱한 회를 곁들인 해산물로 구성된 스끼가 무려 10가지나 나오기 때문이다. 7피스의 회, 초밥, 새우튀김, 꽁치구이, 북어국, 김밥, 미소된장국, 회 무침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만원의 행복이 따로 없다. 회 맛을 내는 특별한 비결을 물었더니, 신 대표는 “우선 우리 집은 2kg이상 나가는 대 광어를 쓴다. 그래야 회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그리고 25년 동안 횟집을 운영하면서 체득한 숙성의 기법도 있을 것이다.”며 “모든 음식재료는 국내산을 쓴다. 고춧가루도 절대로 중국산을 쓰지 않는다.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가장 좋은 요리가 탄생한다.”라고 말한다. 아삭한 새우튀김을 입에 넣던 P씨가 “새우튀김은 정말 바삭거린다.”라고 하자, 신 대표는 “신선한 식용유가 중요하다.”며 “3번 정도 튀겨낸 식용유에 튀김요리를 하면 가장 바삭거리고 맛있다.”라고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숙성의 비법은 도미, 농어, 광어 등 각 어종마다 특성에 따라 가장 맛있는 시간대가 있다. 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세월이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회 뜨는 쉐프>는 올 3월초에 문을 열었다. 무더웠던 지난여름에는 ‘물 회 맛있는 집’으로 소문나,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그는 “회를 드시고, ‘정말 잘 먹고 갑니다.’라는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이제는 접대를 위한 횟집보다, 따뜻한 가족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작은 소망을 말했다.
<회 뜨는 쉐프>의 간단메뉴 광어, 우럭(2인) 1만7천원이다. 대(大) 광어(3인)은 3만2천원, 특대 광어(4인)은 4만5천원이다. <회 뜨는 쉐프>의 런치정식과 구이정식이 1만원이다. 주방실장이 신선한 당일 재료로 맛있게 끓인 탕인 ‘빵장탕’은 1만2천원인데 계절에 따라 변하는 탕의 맛이 재미를 더한다. 단품메뉴로 산낙지나 전복, 해삼, 멍게는 1만원에서 2만원이면 충분하다. 한상 푸짐하게 먹고 싶다면 ‘한상차림’을 시키면 좋다. 소(2인) 7만원, 중(3인) 10만원, 대(4인) 12만원이다. 다양한 스끼가 당일 신선한 재료에 따라 쉐프의 마음대로 상에 올린다. 먹고 나면 호화롭다. 때론 나만의 사치가 필요할 때, 한 번쯤 먹어도 좋을 메뉴가 ‘한상 가득한 차림’이다.
- 회 뜨는 쉐프 / ☏043)293-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