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20만원에서 20억으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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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났다, 이 말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속담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아니라 강남에서 용 난다는 새로운 의미가 요즘 현실에서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기준 서울대 합격자 통계로만 보아도 서울대 입학자 5명 중 1명이 강남 8학군 출신이며, 합격자 중 44.6%가 자사고. 특목고 출신들인 것이 사실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서울대 합격자 태반이 금수저 출신인 것이다. 세상이 징그럽게 돌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수저로 각 계급을 나누기 시작하였고 그 계급의 기준도 생기는 현상, 이 보다 막장인 세상을 우리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점점 금수저가 아닌 젊은 친구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고 그들의 처한 환경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도 크나 큰 욕심이 되어 버리고 있는 시국이다.

돈 벌어서 성공해야지 라는 철없는 아이들이 꾸기엔 조금 허망할 수도 있는 그런 목표가 어릴 적부터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모든 걸 이겨 낸 젊은 청년 사업가를 소개하고 싶다. 청주 수암골 근처 밤고개가구 라는 가구점이 하나 있다. 인터넷으로 저가 침대를 구입했었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사용한지 1년만에 프레임이 무너졌다. 너무 속상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우연히 밤고개 가구를 알게 되었다. 대부분 가구점에 가면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조금 당황한 사람들이 대부분 일 것이다. 특히 필자처럼 혼자 사는 싱글들에게 비싼 가구는 사치 아닌 사치이며 큰 부담으로 와 닿게 된다. 우연히 들렸던 밤고개 가구 사장님은 나를 너무 파악을 잘 하셨는지 마지노선의 가격과 알맞은 품질의 디자인을 추천해주는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직업병인지 그와 대화를 나누면 좋은 얘기가 많이 나올 거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작 31살에 불과했다. 그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30대 초반의 나이로서는 고객에 대한 이해도가 100% 형성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가구점 3층으로 올라가니 그의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직원들도 여러 명이었으며,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는 가구점이 흔치 않은데 가구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한달 100만원을 받았는데 난 20만원으로 생활하고 80만원은 섬에 계시는 어머니께 다 보내드렸다

그는 스스로 섬에서 용 났다고 자신을 표현했다. 너무 너무 많은 고생을 철 들기 전부터 했다고 하였다. 대천에서 배타고 한참 들어가야지 나오는 작은 섬에서 태어난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 유년시절을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냈다고 한다. 아무리 친척들이 잘해준다 하더라도 내 부모가 아닌 터라 혼자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래야만 했다.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목표가 있었다. 영어 100점 맞아야지 수학 90점 넘어야지 이런 목표가 아니라 돈 벌어서 성공해야지 라는 철없는 아이들이 꾸기엔 조금 허망할 수도 있는 그런 목표가 어릴 적부터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학업도 손에서 놓칠 알았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사춘기 한 번 겪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환경의 탓인지 사춘기조차 그에겐 사치로 느껴졌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덧 20살 청년으로 자라게 되었다. 역시 그의 목표는 돈 벌어서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지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3번 온다고 한다. 그에게 드디어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삼촌은 가구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일 손이 부족하니 와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제안하셨다. 이것 저것 따질 수 없는 처지라 무조건 시작하고 보았다. 당시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한달 100만원을 받았는데 난 20만원으로 생활하고 80만원은 섬에 계시는 어머니께 다 보내드렸다. 당시 내가 벌었던 돈 중에 가장 큰 돈이기도 하지만 고생한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편히 해드리고 싶었다. 20만원으로 생활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입고 싶은 것 다 못 입고 하고 싶은 것 다 못 하고 절제 아닌 절제인 삶을 살아가야만 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고향에서 뿌듯해 하실 어머니 생각을 하면 전혀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인터넷 쇼핑몰이 조금씩 활성화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삼촌이 쇼핑몰을 직접 운영해보라는 제안을 해 주셨다. 인터넷과 거리가 멀었지만 이게 나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PC방으로 달려가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스스로 쇼핑몰을 운영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더니 조금씩 모든 것들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100만이 전부였던 나의 월급이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있기 시작 한 것이다. 그 두 번째 기회로 인해 내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말 눈 앞의 현실에만 급급해서 무작정 돈만 벌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멀리 내다보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에 발견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금방 발견 될 수도 있는 약간의 시간 차이일 뿐

그리고 드디어 밤고개 가구를 오픈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형이 옆에서 많은 써포트를 해주고 있다. 외부적인 업무는 형이 담당하고 내부적인 업무는 그가 담당하고 있다. 10년만에 20만원이 전부였던 나에게 20억 매출을 일으키는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매트리스 자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여 밤고개 가구 자체 매트리스 브랜드 라미에스를 런칭하게 되었다. 남들은 어렵게 살았던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 지우고 싶지도 않고 그 어려웠던 시절을 망각하고 싶지 않다. 그 어려웠던 과거가 현재 그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그가 처한 상황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사치였고 시간낭비라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갈수록 더욱 더 힘들어 질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름 실패에 대한 정의를 잘 내리고 있었고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플랜B를 나름 구축하고 있어서 그런지 위기가 봉착했을 때 잘 극복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 황금어장에 안철수가 나와서 했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인생은 운이다. 그 운이라는 것은 준비되어 있는 자들에게 적절한 시기와 어울러져 그것이 비로소 운으로 승화되는 것이라는 그 말이 뇌리 속에 박혀있다. 정말 수많은 노력을 하고 또 했다. 한 번도 힘들다고 지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신이 그런 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두 번의 기회를 내려 주신 것 같다. 세 번째 기회는 아직 온 것 같지 않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세 번째 기회도 앞서 두 번의 기회처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지금 말하는 흙수저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던 같다. 금은 흙 속에서 빛이 나 발견 된다는 것을 이미 어린 나이에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마 수많은 청년들도 아직 스스로 반짝 반짝 빛나는 금을 못 찾은 게 아닐까? 누군 가에게는 짧은 시간에 발견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금방 발견 될 수도 있는 약간의 시간 차이일 뿐, 현재 처해진 환경을 탓하면 가만히 있는 그들에게 소리치고 싶다. 움직이라고 움직여야지 금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AE 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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