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낙화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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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물건이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 고유의 정신과 의미가 녹아있는 문화재나 문화유산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정말이지 아깝고 안타깝다. 특히 수백,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오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보물과도 같은 무수히 많은 무형문화는 때로는 전수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때로는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많은 이들이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그 형태와 기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각지에서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낙화, 다시 생각하다 낙화도 그 중 하나다. 낙화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낙화는 우리 고유의 문화예술임에도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분야다. 낙화는 종이, 비단, 가죽, 나무 등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린 그림을 말한다. 끝이 뾰족하고 무딘 2종의 인두를 불에 달구어 사용하며, 뜨거우면 세우고 식으면 뉘어서 온도에 의해 필선의 굵기와 가늘기, 짙고 옅은 농담의 차이를 조절한다. 본격적인 회화작품으로 제작할 경우 인두를 붓처럼 사용해 수묵화와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인두그림이라고도 하며 글씨만 쓴 것은 낙필이라 부른다. 낙화의 쓰임새나 소재는 매우 다양해서 일찍부터 공예예술로 분류되고 있다. 중국은 명나라 말기에 활동했던 무념이라는 사람이 낙화의 최고 명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는 19세기 활동했던 수산 박창규라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낙화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낙화는 도구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 기능을 배우기가 까다롭고 숙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그 명맥이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낙화를 우리 전통문화의 한 분야로 그 가치를 알리고 예술성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무형문화재 22호 낙화장 김영조 장인, 또 그의 전수자이자 딸이기도 한 김유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영조 장인, 50여 년 세월을 낙화와 함께하다 무려 50여 년 동안 낙화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색색깔의 화려한 물감이 부럽지 않은 낙화의 은은한 참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낙화장인. 무형문화재 제22호 김영조 장인이다. 김영조 장인은 2010년 전국 최초 충북 무형문화재 22호 낙화장으로 지정 고시, 최근 낙화와 더불어 일반인들에게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김영조 장인은 1977년 대구 동아백화점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일본 宮岐縣 낙화전을 열었으며 2010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22호 낙화장으로 지정받았다. 인도 세계공예심포지엄 워크숍, 이탈리아 아솔로 Asolo 비엔날레 참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참석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충북문화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에 선정, 낙화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김영조 장인은 “낙화는 나무나 종이, 비단 등이 타면서 내는 자연 색상을 이용하여 표현되는 예술로 거부감 없는 편안함과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매력이 있다. 또 한국의 민간에서 오래전부터 전래되어 온 소재를 중점으로 작품을 해서 서민적이며 해학적인 한국 공예의 특색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낙화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하는 단계”라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가장 한국적이라는 전통 회화 공예의 장점을 살릴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후진양성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 운영 현재 김영조 장인이 이끌고 있는 ‘보은전통문화보존회’에서는 문화재청 주관 생생문화재사업 ‘정이품송으로 마실가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과 낙화장, 목불조각장, 야장, 보은 송로주를 활용하여 속리산에 있는 솔향공원에서 문화재보호와 소나무의 가치에 대하여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 또한 충북문화재단 주관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 ‘깎.두.지 : 깎고 두드리고 지지다’라는 프로그램을 연 30여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김영조 장인의 딸이자 낙화 전수자인 김유진 씨가 기획했는데 김유진 씨는 “보은에서 활동하는 3명의 무형문화재와 2명의 전수교육조교가 참여하는 차별화된 전통 문화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이라며 “다양한 계층과의 소통과 화합, 새로운 준전문가 양성을 통해 지역의 인적 자산을 늘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을 갖고 변화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것이야말로 ‘발전’이라고 외치며 우리는 전통문화의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다. 우리 문화의 근간이 되는 ‘뿌리’나 ‘근본’이 되는 것들조차도 말이다. 공예기술은 과거 우리 문화의 근간이었다. 시골 아낙네부터 풍류를 안다는 양반들에게까지 공예기술과 작품은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가 깃들여져 있다. ‘요즘 세상에 인두를 지저 그림을 그리다니….’ 어찌 보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뿌리’ 또는 ‘근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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