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갑 속에 있는 만원권 지폐를 꺼내보면 두루 펼쳐진 산자락에 해와 달이 함께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있다. 바로 우리 민화 ‘일월오봉도’다. 또한 왕과 왕비가 앉아있는 자리 뒤에 세워진 병풍에도 여러 가지 민화가 그려져 있어 어느덧 우리 시선에 익숙하다. 흥덕문화의집(관장 윤석위)에서 15년째 민화반을 가르치고 있는 이방우 강사는 민화는 덕담을 지닌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자식을 많이 낳기를 바라고, 출세를 기원하며, 혹은 행복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등 민화는 복을 담은 편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민화는 단순히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의미가 있어 작가의 기원을 담기도하고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기도 한다.
민화 그리려면 그 의미를 먼저 새겨야 민화는 그 의미부터 새겨야 하고 붓 잡는 법부터 물감선택, 농도, 색칠방법 등 기초부터 천천히 배워야한다. 그래서 이방우 강사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첫 수업은 민화의 뜻과 유래부터 이야기한다. 민화의 가치와 소중함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그 뜻과 의미를 마음에 새겼다면 실제 작품은 ‘호작도’로 시작한다. 호작도는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작품으로 호랑이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표정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강사는 “영리한 까치의 놀림을 받은 어리석은 호랑이를 빗대 세상을 풍자하는 것으로 소재가 재미있는 그림”이기도 하면서 “‘신년보희(新年報喜)’라 하여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이 들어 온다’는 뜻을 담고 있어 신입회원의 첫 작품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첫 작품을 마치면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그림의 의미를 설명했다. 꽃 중의 왕으로 부귀·영화와 제왕을 상징하며 서민들이 바라는 소망과 희망을 담고 있는 ‘모란도’,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그림이라면 문방사우를 그린 ‘책가도’, 다산·다남을 뜻하는 ‘초충도’, 잉어가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으로 관직에 등용되라는 뜻의 ‘약리도’ 등 그림마다 지닌 의미를 새기면서 그릴 것을 강조했다.
실력파 회원들,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에도 앞장서 이들의 민화수업은 아침부터 시작해 점심을 먹고 오후 4시까지 그릴 정도로 긴 시간 이어진다. 거의 하루를 온전히 민화 그리는 데만 쏟아 붓고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회원들이 ‘한국예술제’에 그림을 출품해 한번 이상씩 수상한 경력이 있는 실력파다. 오랫동안 민화를 그리다 보니 이제는 주변에서 출품의뢰를 비롯해 봉사의뢰로 들어오는 편이라 몇 년 전 부터는 청주시로부터 거리 벽화 채색 작업을 부탁받고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고 있다. 사직동 중앙도서관 거리, 운천동 거리, 무심천 등에 그려진 민화들이 바로 그들이 그린 작품이라고. 회원들은 봉사활동은 민화의 아름다움을 알렸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입을 모은다. 벌써 10여 년째 민화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반귀현 회장(59)은 “민화는 섬세함, 차분함, 꼼꼼함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인내심도 생겼다”며 “앞으로도 체력이 되는 한 다양한 의미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색감을 써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민화사랑은 나이를 넘어 이어진다 민화반을 살펴보다 보면 여러 회원들 중 단연 눈에 띄는 회원이 있다. 바로 구경순(84)회원. 구 회원은 문의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버스로 흥덕문화의 집에 오지만 결석이 없다. 처음에 기초만 배우려고 왔다가 민화의 고운 색감에 빠져 8년째라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완성될 때마다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정성껏 그린 작품을 딸, 아들친구, 손녀딸 등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더니 받는 사람도 감탄하고 나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고 말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최소희(46)회원은 민화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여 민화를 통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이를 넘어 어느 새 끈끈한 정이 생겼다며 민화를 배우고 싶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 줄 것을 당부했다. 기초반 수업은 화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까지 운영되고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