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4월 초 어느 날,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서전고등학교 교정엔 학생들이 모둠별로 모여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다.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 양지바른 곳에서 책을 읽다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 벽에 기대 책을 읽는 아이, 계단 난간에 걸터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 두런두런 수다나 왁자지껄한 장난을 칠 법도 한데 너무 고요하고 진지해 차마 말을 걸기가 어색할 정도다. 분명 여느 고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다. ‘수업시간에 저 아이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걸까?’ 그랬다. 서전고등학교의 첫인상은 그렇게 낯설고, 어색하고, 그만큼 흥미로웠다. 교실 안 풍경은 더했다. 수업시간임에도 초등학교 쉬는 시간을 연상케 할 만큼 시끄러웠다.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소통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지만 통제하거나 제제하는 사람은 없다. 자거나 딴 짓 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각자 편한 차림, 편한 자세로 수업에 집중한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형 학교?

‘상서로운 배움터’라는 뜻을 가진 서전고등학교가 지난 3월 160명 신입생, 한 학급당 20명씩 8학급으로 개교했다. 자율형 고등학교이자 한국교육개발원(KEDI) 협력학교로 개교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받은 서전고등학교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형 학교로 자율, 참여, 상생을 추구’한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형 학교’, ‘나를 세우고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서전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진천 출신인 보재 이상설 선생이 지은 최초의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의 정신을 이어받은 서전고는 여느 학교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문과, 이과로 진로를 나누지 않는 무계열 교육과정이 특징이다. 2018년부터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 시행되는 것과 발맞춰 서전고의 모든 학생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 등 공통과목을 통해 기초 소양을 기른 뒤 적성과 진로에 따라 선택과목을 통해 맞춤 교육을 받는다. 이는 서전고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두기 때문이다. 윤종원 지역협력부장은 “존중, 안전과 책임,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과 내·외 협력을 통한 구체적 융합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이 주인이다?

서전고에서는 대학생처럼 자신의 진로에 맞는 수업을 골라 선택할 수 있고 학생들이 원하면 없던 과목도 만들 수 있다. 연극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환경 수업에선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고민한다. 기존 공교육에선 시도하기 어려웠던 것이 실현되는 것이다. 한상훈 교장은 “기존 자율형 공립 고등학교보다 자율성과 전문성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학생별 맞춤 교육이 이뤄진다”며 “학생과 교사 모두가 주인이 되는 지속가능한 학교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1학년 3반에 재학 중인 이석호 군은 “중학교 때와는 달리 수업이 다양하고 재밌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서전고 교육과정은 기본 및 창의체험활동 교과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학년의 경우 음악, 미술 시간이 없는데 음악, 미술을 하고 싶은 학생을 위해서 소인수로 교육시간을 편성, 야간에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서전고에서는 1인 1졸업작품(논문)제도와 R&E 프로그램 등도 운영될 계획이다. R&E 프로그램이란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과제연구’ 형식으로 진행하는 주제탐구 활동을 말한다. 한상훈 교장은 “1인 1졸업작품 제도는 사실 일반 학교에서 엄두를 못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마인드의 문제다. 아이들의 능력, 잠재성을 얼마나 믿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학을 포함하여 혁신도시에 포진해 있는 전문가들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학급토의 문화를 형성하고 교육공동체 생활협약, 학생자치법정 운영, 학생 간 멘토멘티 제도를 운영하는 등 배려하고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윤종원 교사는 “행복씨앗학교가 기존 공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제시된 개념이라면 서전고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교육체계를 혁신하고 미래교육의 상을 제시하는 학교”라며 “명문고를 넘어 명품고등학교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윤 교사는 이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우고 싶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촉진자다. 질문이 있는 수업, 학생이 참여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전고는 앞으로 3년 동안 24학급으로 늘리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운영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2022년 2월 28일까지 5년간 자율학교로 운영되며 매년 또는 격년 주기로 교육과정 다양화와 특성화 여부, 교수학습방법, 교원능력개발, 학생·학부모 만족도 등도 자체 평가한다. 기존 공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교육체계 혁신을 위해 남다른 각오로 첫 발을 내딛은 서전고. 서전고 앞날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