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전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역사공부가 좋고 재미있어서, 또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주 금요일마다 역사를 주제로 토론하고 공부한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때로는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현재를 본다. 과거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은 바로 지금, 나 자신의 고민과 별개가 아님을 깨닫는다. 가끔은 대학교수나 연구자들을 초빙해 특강을 듣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땐 소풍가듯이 문화유적지를 찾아 역사적 유물을 직접 확인하기도 한다. 벌써 3년째란다. 말이 3년이지 요즘 같은 세상에 특별히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닌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니 놀랍다. 지방자치단체 지원이나 도움 없이 회원들 스스로 운영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간다.바로 청주시 서원구 성화 5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성화 5단지 도서관 파레트’ 역사동아리 ‘역사야 놀자’ 회원들 얘기다.
‘성화 5단지 도서관 파레트’ 역사동아리 3년째 활동
2015년 3월 처음 모임을 시작한 이후 ‘역사야 놀자’ 회원들은 지금까지 매주 모임을 갖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시기마다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과 영향, 당시 백성들의 바램과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역사야 놀자’ 시간은 예전 중·고등학교 때 무조건 암기했던 ‘왕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그야말로 민초들의 역사, 우리들의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이 왜 힘껏 돌도끼를 쳐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타인의 꿈과 소망을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공부이기 때문이다. 요즘엔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단다. 지난 6월에는 충북대학교 신영우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신영우 교수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에서 전문가 중의 전문가로 꼽힌다. ‘충북지역의 동학농민 전쟁사’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특강에서 신영우 교수는 동학의 의미와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특강에서 신 교수는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알아야 하고 왜 동학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신영우 교수는 동학혁명과 충청지역 백성들의 삶을 이야기 했다. 신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동학의 전성기는 충청지역에서였다”고 전했다.
사실 그동안 동학이라고 하면 ‘서학과 반대되는 개념’, 아니면 ‘전봉준이 이끌었던 혁명’ 그 정도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충청지역 사람들에 의해 동학의 꽃이 피였다니 ‘새로운 사실’에 귀가 번쩍 뜨인다. 역사란 나와 상관없는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신영우 교수는 “역사공부의 매력이자 장점은 단편적인 사고가 아니라 크게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역사공부란 현대를 읽고 미래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역사야 놀자’를 이끌고 있는 전명순 씨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알고 있거나 잘 모르는 역사적인 사실이 많다”며 “역사야 놀자에서는 예전 중·고등학교 때 무조건 암기했던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인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 생겨
‘역사야 놀자’ 회원들 중엔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40~50대 주부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또 성화동 주민도 있고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온 복대동, 개신동, 오송 주민도 있다. 역사논술지도사, 한국사검정시험 등 다양한 역사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도 있고 역사관련 서적 한두 권 읽은 것이 다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거나 주입하지 않는다. 전명순 씨는 “주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편안하게, 회원들이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놀듯이 재미있게, 의미를 생각하면서 역사를 바라본다. 고대사부터 동학혁명까지 공부했으니 현대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현대사까지 다 마치면 그 다음엔 뭘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전명순 씨는 뜻밖에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또한 회원들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란다.3년 동안 쉬지 않고 역사공부를 했다고 해서 회원들 모두 역사에 조예가 깊어지거나 학식이 대단히 높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눈빛은 분명 달라졌다. 과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옆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 ‘역사야 놀자’ 회원들과 함께 있으니 어느새 나도 역사와 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