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여행

‘동해 무릉계곡, 추암촛대바위, 천곡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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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非人間)
- ‘동해 무릉계곡, 추암촛대바위, 천곡동굴’

소나기가 잦은 요즈음의 날씨 탓에 우산을 갖고 가야하는지 망설여졌다.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아침의 청청한 기운은 여행의 달콤한 기대와 더불어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충북공설운동장 앞 광장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한 버스는 그렇게 동해로 미끄러져갔다. 여행가이드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천연 동굴인 천곡동굴을 거쳐 오늘 여행의 백미인 무릉계곡을 관람하게 됩니다. 땅속 굴을 통과해 산의 절경을 보고 마지막으로 애국가 첫 소절에 나오는 촛대바위를 품은 푸르른 동해바다를 보면 오늘 여행은 눈이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11시쯤 드디어 차창가로 푸르른 동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탄성이 흘러나온다. 수없이 보아왔던 바다였건만, 내륙에 사는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바다를 그리워했나보다. 동해시 천곡동에 있는 천곡동굴 입구에서는 허연 김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입구 표시판에 현재 바깥 기온 34도씨, 내부기온 1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노란 헬멧을 쓴 관람객들은 벌써부터 서늘한 기운에 겉옷을 입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천연 에어컨의 바람을 느끼다.

천곡동굴은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로, 4~5억 년 전에 생성된 천연동굴이다. 이 동굴은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동굴로, 1991년 6월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 조성 공사 때 발견되어 총 1,400m 가운데 700m를 개발했다. 일명 지옥통로라고 명명된 구간을 빠져나갈 때는 여기저기서 ‘쿵, 쿵’ 헬멧과 천장바위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관람객들은 “그래서 꼭 헬멧을 쓰라고 했나보다.”라며 “이곳은 정말 시원하다, 이곳이야말로 천연 에어컨이야.”라고 말한다. 동굴 내부는 천장 용식구, 커트 형 종유석, 석회화단구, 종유폭포 등과 희귀한 석순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다. 동굴 입구에는 우주생성과 동굴 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전시관과 영상실을 꾸며놓은 자연학습관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오면 천연동굴의 생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별유천지 비인간, 무릉계곡

무릉계곡 입구에 있는 무릉회관에서 테마여행 일행은 점심으로 푸짐한 더덕구이정식을 먹었다. 싱싱한 산나물에 얹혀 나온 더덕구이는 일품이다. 교차로 테마여행 단골이라는 김선화(38)씨는 “다른 테마여행도 많이 가봤지만 이곳 교차로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바로 푸짐한 점심”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무릉계곡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온 몸으로 몰려온 계곡의 시원한 바람은 한순간 땀을 식혀주고 더위를 잊게 한다. 수천 년을 깎인 천연의 바위들은 커다란 공룡의 알처럼 놓여있고 그 사이로 유리알 같은 계곡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두타산 정상까지 갔다 내려오는 등산객들 중 일부는 아예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하산하고 있었다. 산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려는 것이다. 실상 무릉계곡을 벗 삼아 오르는 산행은 천연의 숲 터널이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계곡의 물과 시인 묵객들의 기념각명(刻名)이 있는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별유천지(別有天地)를 방불케 하는 중대 계곡에 이르자 사람은 있으되 사람을 잊게 만드는 비인간(非人間)이었다. 산 중턱에 일행 가운데 몇몇은 계곡으로 내려갔다. 기자도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청량감이 온 몸에 전해져 왔다. 바닥에 있는 바위에 발바닥을 비비며 물장구도 쳐댔다. 아득히 먼 정상의 바라보다 문득 발등을 간질거리는 무엇이 있었다. 송사리들이었다. 발 근처로 몰려들어 툭툭 건드려보는 것이었다. 천연의 닥터피시였다. 너른 바위에 젖은 발을 내어놓고 가만히 풍욕(風浴)을 즐기며 길게 눕자, 시원한 바람은 내 몸을 스치며 청청한 하늘로 오른다. 이보다 더한 피서가 있을까. 테마여행 고객이라는 전옥자(42)씨는 “교차로 테마여행 덕분에 새로운 세상의 통로를 알았어요. 늘 예약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려요.”라고 말한다. 여행은 삶의 비타민이다. 그 청량한 통로를 기다리면서 사는 하루하루는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다.


능파(凌波),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

늘 애국가가 흐르는 영상에서 보던 풍경을 직접 보니 저절로 애국가가 내 마음에서 흘러나왔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의 가볼만한 곳 10선’에 당당히 선정된 해돋이 명소다. 이곳은 거북바위, 부부바위, 형제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 등 기암괴석이 온갖 형상을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촛대처럼 기이하고 절묘하게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바위가 있으니 이를 ‘촛대바위’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로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있는 추암이다. 잔뜩 흐린 잿빛하늘과 그 구름 사이로 간간히 뿜어져 나오던 희미한 햇살, 파도에 멍이 들도록 부딪혀도 언제나 말없이 꼿꼿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던 바위들이 가슴을 친다. 과거 한명회가 이곳 제찰사 시절 이곳 추암의 절경에 취한 나머지 “속되게 추암이 무슨 이유인가. 이제나마 부끄럼 없게 능파대라고 이름을 고치노라.”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능파(凌波)는 ‘물결 위에 가볍게 걸어 다닌다.’란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같은 이곳 바다의 물결을 보고 지은 것이다. 기암괴석과 어울린 가벼운 걸음걸이라니 참 멋스런 이름이 아닌가. 뒤 돌아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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