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진천 보탑사 가는 길, 토속음식점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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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보탑사 가는 길 옆, 정겨운 집이 눈길을 끈다. 토속음식점 풍경소리다. 합판을 얼기설기 엮어 커다란 통나무에 박아 놓은 메뉴가 군침을 돌게 한다. 나무 메뉴판 위에 매달린 풍경하나. 바람이 불지 않아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저 풍경이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이 집을 들어가 보고 싶은 유혹은 주변의 풍광이 수려하다는 것. 오래된 나무 그네가 홀로 까닥까닥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있다. 베란다에 놓여 진 빈 항아리에는 봄을 담을 마른 흙이 긴 겨울을 지난 흔적을 보여준다. 흙벽에는 짚으로 엮은 망태기며 지게 발, 퉁가리 등 추억의 한 귀퉁이를 만들어주고 있다.


오래된 영사기의 기억
문을 열고 들어가지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풍경은 식당 가운데 놓여진 오래된 영사기. 영사기를 보는 순간 문득 영화를 좋아하는 한 소년과 늙은 영상기사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시네마천국’이 떠올랐다. 영화관에서 영사기를 돌리는 일을 하는 알프레도와 토토의 이야기가 영사기의 필름을 통해 저절로 흘러나올 것만 같다. 늙은 알프레도가 메 만졌던 영사기인 듯 기자는 가만히 그 영사기를 만져본다. 온갖 삶의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우리들 인생 속에서 잊고 싶은 기억도 있을 것이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서 사는 동물이 아닌지라, 아무리 좋았던 추억도 현실에 벽 앞에선 한낱 과거가 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기억 속 그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련한 노스탤지어는 추억이라는 이름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오고간 사람들의 흔적들
자리에 앉자마자 나무 칸막이에 새겨놓은 낙서들이 애틋하다. <병선아, 사랑해!> <나영, 이것 하나만 약속할게 당신만 사랑하겠다고. 2009.12.6> 그들의 사랑은 아직도 유효한가. 메뉴판을 펴자 저절로 시 한편이 흘러나온다.????맑은 동동주 한 잔에 우정을 나누고,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사랑을 키우며 잠시 쉬었다 가는 통나무집 카페. 카페 하얀 벽화에는 오고간 사람들 흔적의 낙서들????최두호 시인이 쓴 풍경소리라는 시다.“이 시를 지은 분은 오래된 지인입니다.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지요.”라며 시의 출처를 알려주는 사람은 이 카페 주인 정낙궁씨다. 그는 원래 진천이 고향이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53세에 갑자기 고향으로 낙향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전 고향에서 지금처럼 농사도 지으며 이런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미리 노후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의 표정은 이미 자연을 많이 닮아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 대부분이 밭이다. 그는 밭에서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거둔다. 풍경소리에 쓰이는 모든 밑반찬을 그 수확물로 만들어 낸다고 한다.


푸른 쑥이 동동 뜬 수제비를 내온다. 들깨로 맛을 낸 수제비는 담백하고 깊은 풍미가 있다. 앞마당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유기농 감자와 당근, 파, 마늘, 들깨로 만든 수제비의 맛은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신 바로 그 맛이었다.“여기는 원래 민물새우찌개가 유명해졌어요. 언제 다음에 한 번 드셔보세요. 근처 초평저수지에서 잡은 진기미(큰 새우)로 요리하기도 하고, 김포에서 보리새우를 가져와 사용합니다.”라고 말한다. 천장에는 굵직한 씨 옥수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영사기 아래쪽에는 직접 키우는 콩나물이 자란다. 금방 물을 주었는지 콩나물시루에서는 아직도 물이 똑똑 떨어지며 맑은 음향을 내준다. 직접 기른 콩나물로 내온 콩나물밥에 양념간장을 얹어 쓱쓱 비벼 먹자 시원한 콩나물 맛과 참기름 향기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연출한다. 몇 알의 하얀 밥풀이 떠있는 말간 동동주는 반주를 곁들여 먹으면 그 맛에 빠져 잠시 세월을 멈추게 한다.

이제는 돌아와 고향 땅에서
통나무집 카페 주인이 되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커피 주고
인생살이 팍팍한 사람들에게
동동주로 위로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세월을 보내는 운수 좋은 사나이

-<통나무 집 사장> 中 최두호

세월이 잠시 멈추고 들어와 쉬었다 가는 곳이다 이곳은. 한평생 도심에서 보내다 이렇게 자연과 벗하며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고 오랜 벗을 기다리는 이집 주인장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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