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만 20년을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받았던 칭찬의 대부분이‘연기 잘한다.’였다. 그 칭찬이 힘이 되었다.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연극이라는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올해로 마흔을 넘긴 이은희(극단 청사) 부대표다. 단어 하나에도 또박또박 눌러 말했다. 공항대합실이라 주변이 산만했으나, 그녀가 말하는 소리는 눈이 달린 것처럼 제 길을 내 또렷이 찾아들었다. 그만큼 발음이 정확했다. 중국연극교류전‘작은 사랑의 멜로디’에서 그녀의 역은 어린‘마루하’였다. 불혹의 나이에 어린 역을 맡았지만, 조금도 어색함도 없었다. 곰삭은 그녀의 연기는 상대 신인배우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이끌어냈다. 덕분에 연극의 완성도는 깊어졌고 재치로 연극은 더욱 생동감이 넘쳤다.
9년 국립극단 정단원으로 활동
그녀는 충북여고 연극반‘하나로’에서 무대에 올랐다. 졸업 후, 곧바로 극단생활을 시작했다.
“이대로 연극만 무작정 하는 것보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구체적으로 연극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예전 연극과에 진학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국립극단 연수단원에 뽑혔다. 그리고 2년 뒤, 정식단원으로 위촉됐다. 국립극단은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꿈의 직장이었다.
“연극인으로 신분보장이 됐다. 오로지 연극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국립극단에 있으면 흔히 귀명창이라고 말한다. 9년 동안 국립극단에 있으면서 실력도 늘었고, 안목도 넓어졌다. 실력파 선생님들과 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니 부지불식간 얻는 것이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 말도 발음기호가 있다. 국어사전을 달달 외웠다. 긴장을 놓으면 어느 사이 한참 뒤떨어졌다. 노력을 많이 했다.”
‘돼지와 오토바이’ 가장 애착이 가
그녀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한 100여편 한 것 같다. 극작가 오태석, 이은석, 골목길 박근형 선생과 함께 한 작품들도 커다란 의미였다. 특히 15년 동안 이어온 극단 청사 문길곤 대표와 함께 한‘돼지와 오토바이’는 제 삶의 기념비적인 희곡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전처, 간호사, 약혼자, 친구 아내 등 아홉 가지 캐릭터를 소화해야 했다. 1인 다역(多役)이라 감정소모가 많았지만, 보람이 있었다.”
현재 이은희 배우는 1년에 연극무대에 7~8번 오른다. 경기도 남양주 학원에서 입시지도를 한다. 이미 스타강사로 이름이 높다.
“기회가 되면 고향 충북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다. 연기지도를 하며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다. 작고하신 장민호 선생께 환갑이 넘으신 연기파 배우인 오영수 선생이 술좌석에서 깍듯이 술을 드리며‘선생님을 따라가려면 얼마나 되어야 할까요?’라고 질문하며 경청을 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바 컸다.”
20년 연기 인생의 이은희 배우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웃는 모습에도 표정이 있음을 처음 알게 된다. 그만큼 이은희 배우의 표정은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천(千)의 얼굴로 다가오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