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하나를 밟을 적마다 음악소리가 났다. 마치 계단 하나하나가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느껴진 것이다.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였다. 헤어살롱 ‘라뿔레’의 문을 열자, 그 소리는 더욱 명정(明淨)하게 들려왔다. 선율은 살롱내부의 곳곳을 어루만지며 호수의 바람처럼 일렁였다. 고풍스런 유럽의 카페에 들어온 느낌이다. 커피향이 저절로 우러나는 풍경이다. 순간, 카페인지 미용실인지 착각하게 만든다.
헤어살롱 라쁠레 김만수 원장은 “찾아주신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철저하게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잡한 미용실 풍경보다 한산하면서도 편안하게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미용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콧수염이 세련된 김원장은 젊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듣노라면 결코 나이와 무관한 삶의 깊이가 느껴진다. 바람 같은 자유로움이 그의 말과 몸에서 그대로 배어나왔다. 짙은 갈색 바탕에 푸른 색조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 굵은 격자무늬의 창에 앉으면 공연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미용은 그에게 꿈을 태동시킨 원천이며, 꿈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고마운 공간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우연히 고2 때 호주교환학생으로 1달 동안 호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어린 마음이지만, 호주사람들의 자유로움이 인상적이었어요. 저의 감성과 딱 맞았거든요. 호주에서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어요.”라며 “미용기술을 익히면 호수에 살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미용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미용실 ‘조앤리’의 문을 두드렸다. 다음해, 그는 망설임 없이 대학도 ‘미용학과’를 선택했다.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미용을 멈추지 않았다. 이발병으로 입대했던 것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제대 후, 곧바로 서울 청담동 ‘라 뷰티코아’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입문했다. 이왕이면 패션의 중심지에서 제대로 일을 배우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헤어디자이너 차홍(차홍 아르더 원장)선생을 만났다. “차홍 선생님은 항상 ‘고객을 사랑하는 연인 대하듯 하라.’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지금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그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호주’라는 꿈을 새긴지 10년이 흐른 2010년 마침내 호주의 땅을 다시 밟았다. 주머니에는 단돈 180만원뿐이었다. 멜버른 ‘굳모닝 헤어뷰티’에 문을 두드렸다. 이틀 만에 취업을 했다. 미용기술 하나로 드디어 호주에서 일을 하며 살게 된 것이었다.
“6개월 동안 호주 멜버른에서 생활하다보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호주사람들의 여유와 자유로움, 삶의 철학은 훌륭했지만 결국 내가 살아야 할 곳은 한국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달았어요.”
1년 동안의 호수생활을 접고, 청주 성안길에 미용실을 열었다. 헤어살롱 ‘라쁠레’였다. 빈 가게에 그가 구상한 헤어살롱을 하나씩 옮겨 담았다. 비가 내리는 날, 한적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면 기막히게 좋은 창도 만들었다. 헤어살롱 이름도 그래서 ‘비’란 의미의 ‘라쁠레(La pluie)’로 정했다.
산남동에 사는 단골고객인 서정희 씨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대형헤어숍보다 언제나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내 집 같은 분위기의 라쁠레를 좋아해요. 사전예약제다보니 제가 원하는 시간에 예약한 후, 마음 놓고 오니 시간절약도 됩니다.”라며 “커피 한 잔 마시듯 이곳에서 머리손질을 하고 나면 기분전환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고객인 서정희 씨의 말처럼 이곳은 철저한 사전예약제. 지나가다 우연히 들린 경우, 예약손님이 없을 경우에 한해 손님을 받는다.
라쁠레 임종이 헤어디자이너는 “라쁠레의 장점은 자유로움입니다. 손님의 개성에 맞춘 창의적인 헤어스타일을 연출이 가능합니다. 사전 예약제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도 미리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고객을 기다릴 수 있어 효율적입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기자가 찾아간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다. 3명의 손님이 차분하게 케어를 받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는 4시경 케어를 끝낸 손님이 나가면서 다시 예약손님 2명이 들어왔다. 공간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능한 실력이 저평가된 헤어디자이너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에게 최적의 일터를 제공하고 싶은 것이 저의 꿈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삶을 즐기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헤어살롱 라쁠레는 일요일 문을 열지 않는다. 그것은 김원장의 철학이다. 그는 “일요일은 어쩌면 헤어숍의 피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과감하게 문을 닫습니다. 남들이 쉴 때, 함께 쉬자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복지의 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도 일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삶의 활력도 생기고 내 직장이 행복한 터전이 되거든요.”라며 “헤어디자이너들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미용기술은 평준화됩니다. 그 다음은 흐름을 읽는 감각과 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헤어살롱 ‘라쁠레’는 앞서가는 감각과 정성을 고객에게 모두 드릴 것.”이라고 말한다.
전국 유명체인점 헤어살롱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품위 있고 삶의 휴식 같은 헤어살롱 ‘라쁠레’가 성안길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청주시민은 커다란 위무라고 믿어지는 오후였다.
헤어살롱 ‘라쁠레’ 043-222-4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