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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에서 강사와 참여자의 평등한 관계 설정 관계의 변화

  • 힙합 콘텐츠 그룹 어글리밤을 운영하며 힙합문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제작과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분야에 처음 발을 내딛던 때를 기억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라는 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다. 같이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들과 ‘우리 때는 이랬잖아’라고 외치며 기획한 것. 힙합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고, 인프라도 선배도 없었던 그 당시 우리의 학창시절을 후배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또 우리 지역의 문화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가 바로 청소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 창구 역할로서 문화예술교육은 좋은 선택지였다. 문화예술교육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특히 지역에서는 더욱 생소했던 덕분인지, 우리가 들고 온 기획은 많은 동료의 공감과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1년이 지나 참여한 친구들과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관계를 맺었고, 염원하던 ‘로컬힙합씬’이 만들어지는 듯했다. 우리는 그다음 해 또 그다음 해에도 같은 사업을 계속 진행하였다. 하지만 참여한 친구들의 만족도는 비슷한 것이 비해, 우리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교육 대상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멘토링을 받고, 컨설팅을 잘 따르려 노력했지만 해도 해도 문제는 해소되는 것 같지 않았다. 어글리밤 전혜원 머리가 아플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문제를 한번 꺼내 보자.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에 왜 입문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기를 원했는가. 그것은 ‘우리’로 표상되는, 그러니까 힙합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한 강사들의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요즘 친구들이 힙합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우리 세대가 힙합을 필요로 했던 이유와 전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기획이 아름답고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하겠지만, 참여하는 친구들이 우리의 생각을 전부 공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 고민의 지점을 꺼내 본다. 우리는 왜 스스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좋은 예술 강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획서와 보고서에 솔직하기보다는 ‘있어 보이는’ 단어들을 담았다. ‘주체적인 참여자’, ‘평등한 관계’, 이런 표현들이 참여한 친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으로는 자꾸 어떤 기획을 추가했다. 전년보다 나아야 하지 않겠냐며. 마지막으로, 교육 대상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책을 구매하고, 멘토링 비용에 다른 단체들보다 높은 비용을 책정했다. 더 잘하려고 한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왜 계속 불안할까. 어글리밤 전혜원 문화예술교육을 짧은 기간 경험하며 알게 모르게 속에 응어리가 진 것 같다.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우리는 교수법의 기본에 대해 몰랐을지언정 가슴만은 뜨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은 차가워지고 낭만은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문화예술교육은 표면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고 평등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가치는 지원기관의 가이드라인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올해 2022년,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자 우리는 스스로를 ‘해방’ 여기에서의 ‘해방’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하고자 했다. ‘나의 해방일지’는 다시 한번 기획서에 반영되어야 했다. 30회차의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없애고, 참여 학생들이 직접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결과물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되고, 음원을 발매해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에 가까워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지고 비로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이러한 기획의 근거를 우연히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크 랑시에르의 이라는 책인데, 책의 모티브가 된 조제프 자코토가 ‘자신도 모르는 외국어’를 가르쳤던 우연한 경험을 배경으로 전통적인 교육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지적 해방’에 대해 논하는 내용이다. 모든 지능을 평등하다고 전제하며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자크 랑시에르는 구식 교수법을 거부하고 스스로 배우는 과정에 도달하는 것을 ‘해방’이라고 표현한다. 교사와 제자는 역할로서 존재하지만, 지능의 차이와 위계는 없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먼저 해방을 경험한 입장에서 지적 해방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제자는 그러한 환경에서 스스로 깨닫게 된다. 나는 2022년의 기획서를 작성하며 해방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 해방을 전달하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충북교육도서관 책키라웃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좋은 강사가 되려면 ‘교수법’에 대해 공부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교육 대상’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그것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와 동료들은 음악과 문화를 그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배웠기 때문이다. 그 경험과 가치관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양분 중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그 양분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자코토의 방식대로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놓으면’ 우리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교수법이 될 수 있다. 예전의 기억들을 한 번 더 떠올려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강사’와 ‘교육 대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언어가 주는 힘이 너무나 강력하기에 우리가 참여자들을 ‘교육 대상’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한 관계는 아마 파괴될 것이다. ‘주체적 참여자’라고 하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커리큘럼은 참여자들의 선택권을 상당 부분 상실케 한다. 하지만 커리큘럼을 없애고 참여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주면, 그 기획서는 기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언어와 시스템의 가이드 라인이 구식인 것이다. 이 역시 사실은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린 것이다. 은 교육계의 모험담으로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더 이상의 모험담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애초에 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분야다. 그런데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의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예술 강사들은 문화예술교육의 본래 목적에 맞게 참여자들을 해방시켜야 할 것이다." 강사가 될 것인가 예술가가 될 것인가. 교육자가 될 것인가 철학자가 될 것인가.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에 몸담으며 ‘나도 예술가’라고 외치는 참여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선생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참여자들이 적어지길 바란다. 우리 같은 작은 조각들이 지배적인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개별적인 시스템을 바꾸도록 해보자. 구식이라고 여겨지는 시스템을 상대로 우리가 새로운 실험들을 해보자. 변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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