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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장과 국의 나라

  • 우리 전통 음식문화에는 독특한 점이 많다. 곡물을 많이 활용하고, 주식과 부식을 구분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사용도 다른 국가와 차이가 있다. 장과 같은 발효식품도 발달했다. 무엇보다 밥상 위에 토기를 놓고 끓는 탕(국)을 함께 나눠 먹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左) 보물 제597호 토기 융기문 발.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초기 토기. 이 토기는 구연부 한 쪽에 짧은 주구가 부착되어, 내용물을 담아 따를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문화재청). (右) 사적 제394호 양양 오산리 유적. 오산리 유적은 약 8천 년 전 신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으로 밝혀졌으며, 집터를 비롯하여 불을 피웠던 자리와 도구를 제작했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확인되었고, 덧무늬 토기 등 다양한 형태의 토기와 당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특징적인 간석기로 함께 출토되었다(ⓒ문화재청). 아주 오래된 끓임(boiling)의 기술 끓는 찌개, 탕을 밥상 위에 올려놓고 나눠 먹는 모습. 이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진풍경이다. 뚝배기 문화 혹은 탕(국) 문화라 할 수 있는 한국인의 개성 있는 식습관이 실은 기원전 6,000년경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는 가설이 최근 연구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가설은 역사 기록 이전의 고고학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고고학 연구는 유럽보다 100여 년, 일본이나 중국보다 반세기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고고학계의 눈부신 발굴 노력으로 우리 고대사는 전기 구석기시대(30만 년 전 이전)까지 끌어 올려졌다. 수많은 조개무덤에서 구석기 말과 신석기 초의 토기 유적을 발굴했고, 수렵 채취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변화하는 당시 선사시대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동남해안과 일본 규슈 북서해안을 포함하는 대한해협 연안에서 역사상 가장 오래된(1만 년 전) 토기가 발굴됐다. 그 덕분에 이 지역이 끓임(탕) 문화와 발효기술의 기원지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토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물이 담긴 음식을 끓일 수 있는 도구를 갖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서양에서는 음식을 꼬챙이에 매달아 구워 먹는 로스팅(roasting)이 오랫동안 조리기술로 사용된 반면에 동북아시아 대한해협 연안에서는 토기를 이용한 끓임(boiling) 기술이 이른 시기부터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토기의 사용은 고대인의 식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해변에서 채집으로 살던 대한해협 연안 사람들은 토기에 바닷물을 담고 생선, 조개, 해초 등 해산물과 산야의 채소, 씨앗, 뿌리 등을 함께 끓인 후, 찌개나 탕(국)을 만들어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을 것이다. 실제로 원시 토기 중에는 한 가족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크기의 뚝배기가 흔하게 발견된다. 끓이고 보관하는 과정 통해 발견한 발효 김과 미역을 늘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도 기원전 8천~5천년, 대한해협 연안에서 형성된 원시 토기 문화의 유산이다. 고대인은 토기에 바닷물을 담아 끓이는 과정에서 그릇 주변에 하얀 소금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해수에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따라서 소금은 신석기의 이른 시기에 대한해협 연안에서 만들어져 사용되었으리라 본다. 소금의 사용으로 염장 발효기술이 개발되었을 것이며, 쉽게 부패하는 해산물의 장기 저장도 가능해졌다. 또한 식염 농도가 3% 수준인 바닷물에 채소를 담가둠으로써, 3~4일 사이 유산균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더스(Leuconostoc mesenteroides)가 우점종으로 자라 pH를 4.5 수준으로 낮추고 여기에 다시 락토바실루스 플란타룸(Lactobacillus plantarum)이 자라 pH를 3.0 이하로 낮춰줌으로써, 장기 저장이 가능한 ‘김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젓갈과 김치의 발효도 토기의 사용으로 일어난 자연발생적 현상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토기에 곡물이나 감자 같은 전분질 식재료를 담아두면,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곰팡이가 자라게 되고 그중에 생전분 분해효소를 내는 라이조프스(Rhizopus)균 등에 의해 당화가 일어나면서 주변의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에 의해 알코올이 생성된다. 이것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곡주다. 향긋한 미감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특성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비법처럼 전수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1천년경에 저술된 중국의 시경(詩經)에는 요주천종(堯酒千種)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원전 2천년대 중국 요나라에 천여 가지의 술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원시 토기 문화 시대에 만들어진 곡류 양조법이 3~4천년에 걸쳐 중국의 요나라를 비롯해 동북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어, 수많은 종류의 곡주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左) 보물 제527호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중 주막. 이 작품은 간이 주막의 광경을 담고 있다. 국을 뜨는 주모와 아들인 듯한 어린아이,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 국그릇을 기울이며 식사를 하는 사람 등 조선시대 주막 모습을 현장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右)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 장 담그기. 두장(豆醬)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장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장을 따로 보관하는 장고(醬庫)를 두었으며, ‘장고마마’로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할 만큼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문화재청) 끓여 먹고, 담가 먹으며 건강해진 한국인 장(醬)을 만드는 콩의 식용은 콩의 원산지인 남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동이족(東夷族)이 기원전 2천년경에 시작했다고 본다. 콩은 날것을 먹으면 심한 설사를 일으켜 먹을 수 없으나 이것을 물에 불려 끓이면 콩의 단백질 소화 저해물질(trypsin inhibitor)을 불활성화해 먹을 수 있게 된다. 이것 역시 끓임 문화를 발전시킨 한반도 신석기인의 업적이다. 장의 제조는 콩의 식용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왜냐하면 콩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이미 곡류 발효기술이 수천 년간 상당히 발전한 때이므로, 삶은 콩에 곰팡이가 자란 것을 소금에 버무려 두면 구수한 장맛이 생성된다는 것을 쉽게 발견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보면 콩은 중국 제나라 환공이 기원전 623년 남만주의 산융을 정복하고 콩 씨를 가져와 융숙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전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중국 한(漢)나라의 기록에 따르면 콩 발효식품 시를 제조 판매한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동이족이 개발한 콩 발효기술은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었다. 원시 토기 문화 시대는 찌개(탕, 국)와 발효식품의 개발로 점차 식량 사정이 좋아지고 식품위생 상태가 크게 개선되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인구가 늘고 체력이 좋아져, 동이족은 고조선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형성기를 주도하는 선진민족이 되었다는 영양인류학적 판단이 가능하다. 실제로 동이족은 중국의 많은 기록에서 그들보다 앞선 선진민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이(夷)를 ‘종대종궁동방지인야(從大從弓東方之人也)’라고 하여 대궁(大弓)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즉, 동이족은 동방의 큰 활을 쓰는 민족(Eastern Archers Tribe)으로 불린 것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이(東夷)’ 항목의 연원 및 변천 참조. 참고문헌 - 이철호(2017). 『한국음식의 역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석학, 과학을 말하다’ 시리즈 29. 자유아카데미, 서울. 『후한서(後漢書)』 총론 서문에는 ‘예기(禮記) 왕제(王制)편에서 말하기를 동방을 가리켜 이(夷)라 하는데 뿌리를 뜻하며, 성품이 어질어서 살리기를 좋아하고, 만물이 땅에서 뿌리를 박고 태어나며, 천성이 유순하여 도(道)로써 다스리며, 마침내 군자 불사 신선의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공자도 논어에서 구이(九夷)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인류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음식문화를 두장(豆醬) 문화권과 어장(魚醬) 문화권으로 구분한다. 한반도는 이들 두 가지 문화를 모두 지닌 지역으로, 동아시아 발효 문화의 기원지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의 장과 탕(국)에는 동아시아 음식문화의 밑바탕이 되는 역사가 있다. 장은 한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이고, 이를 이용하여 만든 찌개와 탕, 국은 지금도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이 땅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장과 국이 있기에 오늘의 한국인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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