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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닮은 두 개의 성소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동시에 보유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문화대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 중국, 인도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함께 등재한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과 스위스 장크트갈렌 수도원(The Convent of St Gall)을 찾아가 본다. (左)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에 건립되었으며 대장경 목판 보관을 목적으로 지은 세계에서 유일한 건축물이다(ⓒ사진제공: 이범수/한국관광공사) (右) 장크트갈렌 수도원 기록관과 도서관 1300년의 역사가 담긴, 서유럽 전통을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방대한 규모의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셔터스톡) 수행 공간으로 출발한 해인사와 장크트갈렌 수도원 802년 가야산 자락에 모습을 드러낸 해인사는 작은 가람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발전을 거듭하던 해인사는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략을 불심으로 극복하기 위해 제작한 고려대장경 경판을 옮겨온 1398년 이후 대가람으로 자리했다. 고려대장경 경판이 해인사로 옮겨진 요인 하나는 오지라는 지형적 특성이다. 그 결과 해인사로 옮겨진 경판과 이를 보존하기 위해 건축한 장경판전은 오늘까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은 1457년 세조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해 1488년 성종 때 완성되었다. 조선 초기 건축양식으로 완성한 장경판전은 여러 차례 보수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원래 모습과 기능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산이다. 스위스 동쪽에 자리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아일랜드 수도사 ‘갈루스’가 병 치유와 수행을 목적으로 612년 오두막 기도소를 세운 것이 기원이다. 작은 기도 공간은 719년 ‘오트마르’ 수도사가 수도원을 건축하면서 수행자가 모여들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수도사들은 수행과 더불어 기도문과 성경구절을 필사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많은 수도사가 1,000년 넘게 걸쳐 제작한 필사본과 서적은 1768년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도서관 등이 완성되면서 보관 전시되고 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규격화된 수도원 설계와 건축원리를 활용해 완성하였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 추구하는 독창성의 면에서는 다소 결여된 유산으로 평가 받는다. (左) 장경판전 내부(ⓒ문화재청) (右) 장경판전을 구성하고 있는 4동의 건축물(ⓒ문화재청) 환경과 지혜가 결합한 장경판전과 장크트갈렌 도서관 불교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장경판전은 자연환경과 과학이 잘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장경판전은 자연환경을 고려해 주요 전각보다 높은 곳에 세웠다. 바람이 잘 관통하고 다량의 햇빛을 유입시킬 수 있으며, 목재 건물의 약점인 화재로부터 경판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큰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 북쪽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장경판전 앞에 서면, 먼저 상쾌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또 태양이 떠 있는 동안 햇빛이 고르게 유입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과학적인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도 확인 가능하다. 바람이 장경판전 내부와 고려대장경을 돌아서 빠져날 수 있도록 창호의 모양과 크기를 달리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습도를 유지할 목적으로, 바닥은 흙에 소금과 숯을 혼합해 다져 놓았다. 장경판전이 얼마나 자연환경을 활용한 과학적인 공간인지 알 수 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 종교건축물을 상징하는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평지에 세워져 있다. 처음 오두막이 세워질 7세기에는 나무로 가득한 들판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이어온 수도원은 18세기 후반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수도원으로 위용을 드러냈다. 단독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장경판전과 다르게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대성당을 축으로 서적과 필사본이 보존된 도서관 등 여러 건물이 함께 지정되어 있다. 평범한 외관을 갖춘 수도원 도서관은 5층 구조로 대성당 동쪽에 세워졌다. 도서관의 주요 공간은 필사본과 서적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2층이다. 복층 구조로 이루어진 이 전시관에는 약 17만 권에 달하는 서적과 필사본 가운데 일부만 전시되어 있고 다수는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수도원 도서관의 내부도 해인사 장경판전처럼 바람과 햇살이 잘 통하도록 창문을 갖추고 있다. 비슷한 용도, 하지만 다른 분위기 해인사 그리고 장경판전과 장크트갈렌 수도원 및 도서관은 탄생 배경과 목적은 유사하다. 그러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규모와 양식, 화려함이다. 장경판전의 대표 건물인 수다라장은 나무 기둥에 기와를 올려놓은 아담한 직사각형 목조건물이다. 실내도 소박한 출입문과 경판을 보관할 수 있는 나무로 제작한 구조물, 서까래와 대들보에 그려진 단순한 단청이 전부이다. 바닥도 흙과 소금, 숯 등을 혼합해 소박하게 마무리해 놓았다. 반면 석조와 벽돌을 이용해 완성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높은 첨탑을 갖춘 대성당, 크고 작은 여러 부속건물까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웅장하다. 수도원을 구성하는 여러 건물의 실내도, 용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규모와 장식 그리고 조형물로 완성해 놓았다. 무엇보다 천장과 벽을 장식한 화려한 프레스코 천장화와 장식이 장경판전과 상반된다. 수도원의 도서관도 사정이 비슷하다. 양피지 위에 필사해 놓은 기도문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수도사들이 적어 놓은 필사본과 문학·역사·철학·수학 서적 등이 보관된 전시대와 책장, 천장화, 바닥 등 눈이 부시도록 호화롭다. 유사한 탄생 배경과 목적으로 세워진 해인사 장경판전과 장크트갈렌 수도원 및 도서관이지만, 현재 모습은 뚜렷하게 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해인사 주변은 상점과 숙박시설이 조성되어 있지만 여전히 한적해 수행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심가가 형성된 탓에 주변은 항상 자동차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수행공간의 기능은 상실한 상태이다. 유네스코에는 문화유산 813곳, 기록유산 430개가 등재되어 있다. 그중 해인사 장경판전과 장크트갈렌 수도원처럼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동시에 소유한 장소는 소수이다. 특히 오직 불교경전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경판을 보존할 목적으로 세워진 해인사 장경판전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유산이다. 동서양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불교와 기독교의 수행 공간에서 출발한 해인사와 장크트갈렌 수도원, 그리그 안에 자리잡은 장경판전과 도서관. 두 세계유산은 동서양의 상반된 자연관, 건축양식, 예술성, 과학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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