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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공익신고

  • “거, 날씨 한번 고약하다. 꼭 함박눈이라도 오실 것만 같네그려.” “무슨 심보가 그래유? 우리는 장사가 안돼서 죽겠는데.” “어디 날씨 좋다고 손님 들든가?.” “그래도 형님네는 손님이 좀 들잖우?” “우리도 보증금 거덜나기 일보직전이네.” 시름을 덜어주기는커녕, 보태줄 것만 같은 음침한 날씨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팔짱을 끼고 하늘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향수화원〉을 운영하는 소갈 씨이고, 그보다 조금 젊은 사람은 한정식 〈산정각(山庭閣)〉을 운영하는 이 사장이다. “형님! 오늘부터 5인 이상은 함께 모여서 식사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식당은 타격이 더 클 게 아닌가?”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쯤이면 송년회다 신년모임이다 해서 손님이 가득 차고 넘칠 시기인데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면 우리 보고 죽으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아니라나. 저 지독한 코로나19가 자꾸 되살아나니까 정부에서도 하는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니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할 것 같네.” “참, 속도 편하십니다. 장사 안돼서 죽겠는데 무슨 얼어 죽을 정부 시책에 동참입니까?” “….” “그럼, 5명 이하면 2명, 3명 앉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허 허, 이 사람! 공연히 꼼수 부리다 걸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어.” “형님이나 나나 만날 정부 말만 믿고 따르다가 월세도 못 내고 이 모양 이 꼴 아니우. 그러니 이제라도 눈치껏 살아야 할까 봅니다. ” “그래도 어쩌겠나. 순리대로 살아야지?” “예약 취소되면 큰일인데….” 소갈 씨가 전에 하던 의류업에서 꽃집으로 갈아탄 것은 3년 전이었다. 그동안 의류업에서 손해만 보았기에 가게를 처분하고 당분간 쉬면서 다른 사업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몸이 약하긴 해도 큰 병 없이 지내던 아내가 갑자기 위암으로 입원해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업자금으로 남겨둔 돈 절반가량이 병원 입원비로 날아가고 말았지만,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마침 집 부근에 남은 돈 가지고 할 수 있는 허름한 가게가 나와서 보증금을 걸고 장사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꽃집은 재미가 있었다. 월세를 주고도 몇 푼 남았고 계절마다 다른 그윽한 꽃 향을 맡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수술 후 집안에서 늘 우울해하던 그의 아내도 가게에 나오면 활기를 되찾아 오전에는 가게를 지켜주곤 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어 오후 시간에만, 아르바이트생을 쓰며 확장은 피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사업이지만 시작하길 잘했다며 한숨 돌릴 무렵 불한당 같은 코로나19가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졸업식 입학식 결혼식 등 모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니 꽃 소비는 급격하게 줄어든 게 아니라 막혀버렸다. 꽃을 아무리 싸게 팔아도 사 가는 사람이 없었다. 하교 무렵 학교 앞, 또는 인근 회사 앞에 가서 헐값에도 팔아 보았지만, 그럴수록 적자만 늘어났고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머잖아 종식될 것 같던 코로나19는 장기전을 준비한 듯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갈 씨는 이 난국이 하늘의 저주라 생각했다. “내로남불”을 외치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일부 정치인, 오직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사업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착각하는 철없는 일부 젊은이들,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하늘이 내린 징벌이라 생각했다. 평생을 올곧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생각과는 맞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지만, 연약한 민초, 소갈 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정부 시책을 믿고 따르는 일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선심 쓰듯 지원해 준 재난지원금, 그 돈 몇 푼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이젠 아르바이트생을 쓸 필요도 없어졌다. 어쩌다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원을 쓰지 않고 꽃 배달도 다니고 쓰고 남은 근조화환을 가져가라고 하면 달려가 실어 온다. 몸이 약한 그의 아내지만, 머플러를 쓰고 ‘꿈에 떡 맛보기’만큼이나 드뭇하게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종일 가게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권리금 한 푼 없이 자신의 꽃집을 내놓은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와서 둘러보는 사람도 없다. “형님! 버리는 장미꽃 있으면 몇 송이만 줘요” “어차피 남은 것은 버리려든 참이었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아니요. 손님이 하도 들지 않으니까 그냥 장미라도 몇 송이 꽂아놓고 치장하면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 “좋은 생각일세.” 소갈 씨는 버리려던 장미꽃 한 다발을 〈산정각(山庭閣)〉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여보! 앞집 〈산정각(山庭閣)〉은 오늘 손님이 좀 드는 것 같네요.” “그래 봐야 뜨내기 몇 명이겠지 뭐.” “아니에요. 제법 많이 들어요.” “그래, 정말 다행이네.” “우리는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있어야 꽃을 팔지. 내다 버리는 게 절반이 넘으니 원….”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설마 코로나19도 물러갈 날이 있을 거요.” “이 양반, 밀린 월세가 얼마인데 그렇게 태평스런 소릴 해요?” “참, 집주인이 임대료 깎아준다고 하지 않습디까?” “뭐, 좀 깎아준다고 하긴 했는데 정확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산정각(山庭閣)〉으로 들어가는 손님의 숫자가 의외로 많았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소갈 씨! 뭔가 마뜩잖은 기색이 역력하다. 두어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구청 완장을 찬 사람들과 방송사 기자로 보이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산정각(山庭閣)〉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단체 손님 아니라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동문 모임이라는 것 알고 왔으니 솔직하게 시인하세요.” 옥신각신, 단속반과 〈산정각(山庭閣)〉 사장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결국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는 확인서를 써 주는 것 같았다. 상가 불빛도 모두 꺼진 자정이 한참 지난, 조용한 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산정각(山庭閣)〉 출입문 밑으로 봉투 한 장을 밀어 넣는 늙수그레한 사내가 있었다. 그 봉투 안에는 다음과 같은 글과 돈이 들어있었다. “우리 모두 힘든 시기이지만,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읍시다. 공익신고 포상금 10만 원짜리 상품권에 40만 원을 보태드립니다. 모자라는 금액은 원인 제공자께서 보태서 과태료 해결하기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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