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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따라 절벽길 3.6㎞ 불과 물이 빚어낸 비경 위를 걷다

2025-05-16

라이프가이드 여행


한국관광 100선
한탄강따라 절벽길 3.6㎞ 불과 물이 빚어낸 비경 위를 걷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화산이 분출한 후 급격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지구의 주름, 주상절리는 주로 해안가에서 볼 수 있다. 4만여 개의 현무암 기둥이 만들어낸 북아일랜드의 ‘자이언트 코즈웨이’, 일본 후쿠이현의 ‘도진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드물게 뜨거운 불과 시간의 마법을 내륙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내륙 하천형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있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다. 한탄강을 따라가며 병풍을 쳐놓은 듯 수직의 주상절리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다.

 
주상절리길의 핵심 장소인 철원 한탄강 스카이전망대.
반원형 구조의 전망대는 바닥이 강화 유리로 돼있어 눈 아래로 장대한 절경이 펼쳐진다. (사진. 철원군청)



   2021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의 신비로운 절경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절벽 중간에 설치된 잔도(棧道,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가 개방됐다. 폭 1.5m, 총 길이 3.6㎞에 이르는 잔도는 ‘한탄강 하늘길’로도 불린다. 이 하늘길 덕분에 사계절 달라지는 주상절리의 풍광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자연경관 외에도 지질학적·생태적 다양성까지 두루 갖춘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마다 발표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병풍처럼 둘러선 검은 현무암 절벽
   3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차를 타고 약 두 시간을 달려 강원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드르니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주상절리길을 탐방하려면 드르니매표소(갈말읍 드르니길 119-27)나 순담매표소(갈말읍 순담길 103)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드르니’라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넓은 들’을 의미하는 강원·경기 북부 방언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잘 알려졌다.
   드르니에서 반대편 매표소 순담까지 주상절리길이 3.6㎞이어진다. 이날 미세먼지가 심해 전 구간을 완주할 생각은 없었지만 오후 4시 이후 드르니 출입구가 폐쇄되기 때문에 끝까지 걸을 수밖에 없었다.
   출입구를 지나면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거꾸로 순담 쪽에서 출발했던 이들에게는 이곳이 마지막 난관이라고 할 수 있다. 계단 너비가 1.5m 안팎에 불과해 지친 기색으로 계단을 오르는 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계단을 내려가면 본격적인 주상절리길이 시작된다. 초반부터 마주한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선 검은 현무암 절벽이 한눈에 펼쳐졌다. 갈수기임에도 한탄강 물줄기는 완전히 마르지 않고 굽이치며 흘렀다. 해안에 있는 제주도 대포 주상절리, 경주 양남 주상절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절벽과 강물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은 마치 무협영화의 배경 같았다.

 
철원군 순담계곡에 위치한 순담매표소에서 시작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전경 (사진. 철원군청)


 
세계적으로 드문 내륙 하천형 주상절리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는 약 27만 년 전 휴전선 이북의 강원 평강군 오리산에서 분출된 현무암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흐르며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륙에서 하천을 따라 흐른 용암이 식으면서 주상절리가 형성된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처럼 강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그 단면과 내부구조가 그대로 노출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의 컬럼비아강 현무암 대지나 인도의 데칸고원 용암대지도 내륙 주상절리로 잘 알려졌지만 하천과 직접 맞닿아 있거나 침식에 의해 절리 단면이 길게 드러나는 ‘협곡형 주상절리’는 아니다.
   이 같은 지질학적 희소성과 학술적 가치 덕분에 철원의 주상절리를 포함한 한탄강 일대는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2020년)받았다. 세계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중요한 학술적·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질 유산이라고 인증한 국제 지정 보호지역이다. 지구의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살아 있는 지질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48개국에 걸쳐 213곳의 세계지질공원이 지정돼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모두 5곳이 등록돼 있다. 2010년 제주도가 국내 최초로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경북 청송, 2018년 광주와 전남에 걸친 무등산권, 2020년에는 한탄강 일대, 2023년 전북 서해안 지역이 이름을 올렸다.
   드르니매표소에서 주상절리길로 들어가 10분쯤 이동하면 화장실이 있는 너른바위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음 화장실이 있는 샘소 쉼터까지는 30~40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볼일을 해결하고 가는 것이 현명하다. 너른바위 쉼터와 드르니 스카이전망대를 지나 주상절리교 앞에 섰다. 지상 20~30m 높이에 설치된 출렁다리는 고소공포증이 없어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첫발을 딛는 순간 다리가 출렁거리면서 진동이 그대로 느껴졌다. 격자형 철제망으로 된 다리 바닥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아찔한 한탄강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감 자극하는 주상절리길
   주상절리교를 경험하고 나면 다른 코스는 훨씬 쉽게 느껴진다. 급경사의 현무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쌍자라바위교’, 주상절리 틈새의 돌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돌단풍교’, 인근 골프장 2번홀에서 공이 날아올 수 있다고 해서 보호망이 설치된 ‘2번홀교’는 비교적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출발 후 25분쯤 지나자 철원 한탄강 스카이전망대에 도착했다. 철원군에 따르면 이곳이 주상절리길의 핵심 구간이다. 장대한 절경을 더 스릴있게 조망할 수 있도록 강 쪽으로 돌출된 반원형 전망대는 바닥이 강화유리로 돼 있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망대를 지나 화강암이 가로로 깨진 수평절리를 볼 수 있는 ‘수평절리교’, 다양한 화강암 지질을 관찰할 수 있는 ‘화강암교’, 화강암 절벽의 단층구조를 볼 수 있는 ‘단층교’를 마지막으로 주상절리길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