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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으로 지은 숭고미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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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으로 지은 숭고미
'약현성당'

    SBS드라마<열혈사제>에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지어진 사적 제252호 약현성당이 등장한다.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으로 한국 천주 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적 제252호 서울 약현성당 내부.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건물로 1892년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가 설계·감독하였다.
 
화 잘 내는 사제의 성당
     흔히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사제는 평온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아니,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드라마 <열혈사제>의 주인공인 김해일(김남길 분) 신부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피가 뜨거운 사람’이다. 작은 일에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낸다. 경건하게 미사를 집전하다가도 부스럭거리면서 빵을 먹는 신도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쫓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신도에게는 “당신을 위해서 기도 못하니까 나가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본인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주임 신부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분노는 폭발한다. <열혈사제>는 쉽게 분노하는 신부가 신뢰가 가지 않는 어리바리한 형사와 함께 주임 신부의 죽음을 파헤치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가장 성당다운 성당
    <열혈사제>의 주요 배경이 되는 약현성당은 서울 중림동에 위치한다. 1891년에 머릿돌을 올리고, 1893년 완공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천주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 당시에는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선 형태의 건물이었을 거다.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세워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1891년 명동성당의 주임인 카밀레 두세(Camille Eugene Doucet)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마련했고 부주교였던 코스트(E.J.G. Coste) 신부의 설계와 감독하에 지어졌다. 약현성당은 한국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2호로 지정됐다. 종교적으로 배척받는 척박한 시기에 오직 종교적 신념으로 굳건히 세워진 이곳은 아직도 곳곳에서 ‘뚝심’을 읽을 수 있다.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도 없앤 장궤틀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장궤틀이란 무릎을 꿇을 수 있게 되어 있는 틀로 성당안의 신자들이 앉는 의자 뒤에 같이 딸려 있다. 하지만 사제와 신자 간의 간격을 넓히고 신자들을 수동적인 청중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없애고 있는 추세. 하지만 약현성당에는 이 장궤틀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실제 미사 중 사용한다.
 
(左)SBS 드라마 <열혈사제> 단체 포스터      
(右)서울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라는 점과,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와 순교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구한말 천주교 전파 도중 처형된 순교자 16명의 위패를 모신 최초의 성당으로 기록된다. 한국교회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의 집 인근으로 많은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약현(藥峴)’이란 말은 약재가 거래되던 서대문 밖 언덕의 지명에서 비롯된 것인데, 약현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약현성당이라 이름 붙었다. 이 언덕에서는 천주교 박해가 가장 심했던 당시 순교자 103명 중 44명의 성인이 처형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 1896년 4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사제 서품식이 열린 곳도 약현성당이다. 고난의 역사를 지난하게 신념으로 버텨온, 가장 성당다운 성당이라 할 수 있겠다.
    극 중 김해일 신부가 때로는 신도들에게 화를 냈다가, 하느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구담성당’이 바로 사적 제252호 약현성당이다. 김해일 신부가 언덕을 따라 기도동산의 길을 따라 내려오는 모습과 본당 앞마당에 무릎을 꿇은 모습 등에서 성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본당 앞 오른편의 시계탑도 등장한다. 성요셉 부자상과 등나무 쉼터, 성당 사무실까지 약현성당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요 배경이자, 김해일 신부의 분노가 폭발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용서하고 모두를 용서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다소 코믹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거의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드러내는 신부와 엄숙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성당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극은 한층 더 흥미롭게 전개된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종교와 상관없이 한 번쯤 ‘저 성당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다. 

아름다운 건축양식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약현성당은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고풍스런 붉은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묘한 빛이 멋스럽다. 성당 외부에는 높이 26m의 뾰족한 종탑이 있어 시간마다 청아한 종소리를 들려준다. 종탑 아래에는 아치형 창과 둥근 원형 창이 있다. 둥근 아치가 주요 모티브로 쓰이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뾰족한 지붕의 고딕 양식을 절충시킨 독특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벽돌의 노화 및 여러문제가 야기되면서 1974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행했다. 성당 안 화려한 제단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성당 복원 공사 당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는 한국색유리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 이남규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순백의 천장이 이루는 조화가 아름답다. 
    엄청나게 화려한 장식도 없고 좌중을 압도할 만큼의 웅장한 규모도 아니다. 다만 성당 건축의 기본 공간과 형태를 꼭 필요한 만큼만 옹골차게 갖추고 있다. 1998년 2월에는 30대 취객이 성당 제단의 커튼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건물이 전소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어야 했다. 당시 성요셉상과 성모마리아상 등 주요 유물들이 화재로 소실됐고 이후 복원됐다. 오랜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약현성당은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 당시 방문지로도 유명세를 탔다. 인근 서소문역사공원과 더불어 교황청이 인정한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左)서울 약현성당은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 구조이며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이다.
(中)SBS 드라마 <열혈사제>            (右)약현성당 종탑부. 성당 외부 에는 높이 26m의 뾰족한 종탑이 있어 시간마다 청아한 종소리를 들려준다.
 
서울의 순례자 길
    약현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그 자체로 ‘순례자의 길’이 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서울(서부)역, 고가도로를 공중정원으로 꾸민 ‘서울로 7017’이 끝나는 지점에서 가깝다. 성당에서 큰길 하나를 건너면 ‘염천교 제화거리’가 있다. 대를 이어 구두를 짓는 장인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약현성당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신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개방돼 누구든 방문이 가능하다. 정문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는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이 있다.
     ‘예수 고난 14처’라고도 부르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무거운 십자가를 진채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갔던 수난의 길이다. 14개 지점마다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의 수난 과정을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도동산도 조성되어 있다. 
    본당 뒤편에는 수호성인인 성요셉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부자상이, 본당 앞에는 성모사장이 있다.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채워진 산책길 덕분에 신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약현성당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서소문 역사문화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해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성당 경내에는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 코스로 빠지지 않는 서소문순교자기념관이 있다. 성당 옆으로는 가톨릭 출판사와 가명 유치원, 가톨릭 음악대학원이 있어 인근 모두 성스럽고 거룩한 분위기다. 하지만 꼭 종교를 갖지 않았더라도 약현성당은 찾아가는 그 여정 자체만으로 무척 흥미로운 곳이다. 핍박받았던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울리는 종탑의 종소리처럼, 약현성당엔 오랜 시간 종교적 신념 하나로 버텨온 묵직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