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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마음을 누비다

2021-09-10

문화 문화놀이터


시대를 잇는 삶
정갈한 마음을 누비다
'누비장 전승교육사 유선희'

   일정한 간격으로 동일한 폭의 홈질을 이어나가는 바느질 법, 누비.
   어느 때보다 부족함이 없는 현대 의복 사이에서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았다. 손끝으로 한 땀을 누비며 느림의 미학을 이어나가는 그의 바느질을 보고 있으면, 예술은 결국 하나의 선에서 완성됨을 느낀다. 
 

'우수 이수자'는 2019년 무형문화재 전승체계의 바탕을 이루는 이수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3년 이상 활동한 이수자 중에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참여와 전승 실적이 탁월한 사람을 추천받아 1년간 우수 이수자로 지원하고 있다.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2020년 우수 이수자에 선정되었고 그해 12월 10일 전승교육사로 인정되었다.
 
우연한 만남, 의외의 기회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유선희 누비장 전승교육사는 자신이 누비와 인연을 맺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물과 같은 아이를 갖게 된 그는 우연히 서양의 누비, 퀼트를 접하게 된다. 고요히 앉아 조각낸 천을 다시 꿰매는 퀼트는 그의 마음과 아이의 건강을 모두 안정시켜 주었다. 그렇게 퀼트숍까지 운영하며 바느질의 매력을 알아가던 중 우연히 누비장 김해자 보유자의 개인 전시전을 방문하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평생 해야 할 것이 바로 누비였음을 깨달았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퀼트를 하면서 느끼지 못한 경외감을 느꼈어요. 집에 돌아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오래 고민하고 누비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직접 누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알아냈죠. 왜 제가 그때 경외감을 느꼈는지를.”
   한땀 한땀 정갈하게 누벼진 옷을 보며 느낀 경외감의 출처를 알기 위해 본격적으로 전통 의복을 만들기 시작한 유선희 전승교육사. 아쉽게도 경주에서 열렸던 김해자 누비장의 누비 수업에는 아이 양육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대신 첫 3년 동안 천연 염색과 조각보 기술을 배워 나갔다.
   그렇게 전통 의복이 무엇인가에 감을 잡을 때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김해자 누비장이 서울에 누비 공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간 쌓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한 유선희 전승교육사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그는 단 한 학기의 수강 이후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左) 오목누비저고리  右)유선희 전승교육사는 공방 '올'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함 속에서 느끼는 경외감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퀼트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더하는 작업이라면, 누비는 계속해서 덜어 나가는 작업의 연속이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기술로 천의 단면을 이리저리 장식하는 퀼트와 달리 누비는 일정한 간격과 동일한 기법으로 옷 전체를 감싼다. 홈질을 하다 혹시라도 잡념이 들어 모양이 어긋났을 때 퀼트는 실과 바늘의 기교를 이용해 금세 흠을 덮어낼 수 있다. 하지만 누비는 불가능하다. 한번 어긋난 홈질은 그대로 천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야기’한다. 지금 마음이 잠시 어지러워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그래서 누비는 계속해서 빼 나가야 한다.
   기교를 빼고, 생각을 빼고, 오로지 한 길에만 집중하며 천을 가로지르는 홈질을 할 때 좋은 누비옷이 만들어진다.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누비가 가진 ‘빼기의 미학’이 그 당시 느낀 경외감의 핵심이었음을 고백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했는지가 다 보여요. 마음이 가지런했구나, 어지러웠구나, 요즘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것들이 다 드러나죠. 누비는 그런 기술이에요. 사람의 마음을 오롯이 비추는 거울 같은 기술이요.”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전통기술 그 자체는 물론, 전통기술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겨울에만 누비옷을 입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누비는 겨울 의복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비는 한여름을 제외하고 봄, 가을, 겨울옷에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 다만 겨울옷에는 충전재를 넣으며, 봄과 가을옷은 충전재를 넣지 않고 누빈다. 그렇다면 충전재를 넣지 않는데 왜 옷감의 중간에 바느질을 해야 할까? 바로 여기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드러난다. “『규합총서』에 보면 옷을 빨 때 모든 바느질을 다 뜯어냈다는 기록이 있어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죠. 하지만 누비옷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옷이 견고해지기 때문에 굳이 천을 다 뜯지 않아도 세탁이 가능해요. 그래서 주로 아이들 옷에 많이 사용한 기술이기도 하죠. 자주 빨아야 하니까요.”
   누비는 옷을 견고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기능 외에도 무늬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 옷을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서양은 가로로 줄무늬(스트라이프) 모양을 두지만, 우리 전통 문양은 세로줄 무늬였던 것. 또한 일정한 간격으로 옷 전체를 가로지르는 누비는 그 간격이 중요하다. 솜을 아주 조금 넣을 경우는 1cm 간격으로 가늘게 누비는 세누비 혹은 잔누비 기술을 사용하며, 솜을 더 넣을수록 간격이 늘어나 1~4cm 폭의 중누비 기술을 적용한다. 또한 솜이 아주 많이 들어갈 경우는 4cm 이상의 간격으로 누비는 드문누비를 사용한다. 
 
左) 솜누비 중치막    右)솜누비까치두루마기
 
누비는 역사의 흐름 어디쯤에 서 있나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과거 선조들의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그에겐 복식 유물이 두 번째 스승이다. 옷을 보면 그 사람과 시대의 생활관이 엿보인다. 시대마다 옷의 형태가 다르고 바느질이 다르며 소재가 다르다. 이러한 복식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의복을 만드는 일의 핵심이라고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강조했다.
   “누비 기술을 배우고 잠시 회의감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내가 그냥 기술만 익히는 기계인가 싶었죠. 그때부터 복식사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전반적인 의복의 역사를 알아야 내가 배우고 선보이는 기술이 역사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역사 속에서 그 의미를 되찾고 싶었습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자신이 역사에 기여하는 바를 찾기 위해 그는 의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선조의 지혜 속에서 앞으로 누비가 가야 할 길을 찾고 있다는 유선희 전승교육사. 그는 누비 기술을 익히는 것과 더불어 후손에게 기술을 교육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임을 전했다. 특히 누비 교육을 진행했던 근 10년 동안 수강생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을 보며 전통 의상의 인기를 실감했고 책임감 역시 커졌다.
   “배움을 중요시하는 만큼 후배들에게 교육하는 데도 공을 많이 들이고 있죠. 요즘은 누비 기술을 후손들이 어떻게 사용하게 할 수 있을지도 고민 중이에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게 해야 할지 혹은 현대 기술이나 의복에 접목해 상업화를 하게 해야 할지 두 갈래 길에 서 있죠. 저는 전통 기술을 잘 전수하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후배들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유선희 전승교육사는 기술에 관한 생각뿐 아니라 전통 의복 기술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많은 사람은 그에게 전통 기술을 현대 의복에 녹여내 대량생산이 가능한 상품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전통은 전통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가 처음 누비옷을 보았을 때 느꼈던 전통의 경외감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누비만이 선사하는 미학, 잡념과 기교를 덜어낸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유선희 전승교육사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