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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섬기며 욕망과 이별 연습을 하는 미호천 시인

2020-01-30

문화 문화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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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생태계 DB
물길을 섬기며 욕망과 이별 연습을 하는 미호천 시인
'욕망과의 이별이 우선될 때 글도 더 투명해질 것 같다는 시인 옥근아'

    속에 불길을 품어서 몸을 식히느라 물길에 기대어 산다는 미호천 시인을 만났다. 충북에서 교직 생활 20여 년을 했음에도 옥근아 시인의 어투에는 경상도 억양이 배어있다. 거제도에서 나고 자랐으나 청주를 고향으로 삼아 아주 텃새가 되어버린 사람. 영역을 넘나들며 충북의 작가로 시집과 동화집, 수필집을 합쳐 일곱 권째 책을 출간한 사람이다.


 
고통의 터널 끝에서 시를 만나다
    “처녀 적, 유치원 교사 시절부터 동화를 먼저 썼어요.”
    정부가 한창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던 1880년대. 모성성과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산아제한 정책에 항거한 첫 동화 ‘누나와 피리’가 여성중앙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그 후로 장애아 가족의 애환을 그린 중편 동화 ‘꿈꾸는 모래알’이 부산 MBC 공모전에 당선했지만 결혼하면서 십여 년 침묵했습니다. 출산 이후에 쓴 페미니즘 동화 ‘할미꽃 허리는 누가 펴주나’가 동화 작가 정채봉의 심사로 제4회 여성신문사 여성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다시 글을 쓰게 된 셈입니다. 
    ‘바람을 삼킨 풀잎’과 ‘새들이 지키는 마을’은 장애인 가족의 애환을 담은 동화집이었고, 사계절출판사가 출간한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는 특수교육 현장을 다룬 에세이였다. 특히 에세이는 그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어 전국의 도서관에 뿌려졌고 교육학 전공자들에겐 현장을 이해하는 필독서가 되었다. 그녀의 눈길은 늘 사회적 약자의 아픔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그녀가 시에 눈 뜨게 된 것은 충격 때문이라고 했다. 갑자기 어머니를 잃고 못난 딸은 자책과 회한을 형벌처럼 겪어냈다고 술회한다. 허망한 삶에서 간신히 출구를 발견한 것이 바로 ‘시’였다. 시는 내적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교직 근무 중에 첫 시집 ‘내 마음의 패스워드’를 출간하면서 충북작가회의와 시천 동인에 합류하게 된다.

글쓰기는 생존의 전략이었습니다
    글쓰기 중에도 특히 시는 억눌렀던 무의식에 숨구멍을 터 주었어요. 뜨거운 언어들을 토해내고 식히다 보니 나를 괴롭히던 내 안의 화염이 차츰 가라앉았습니다. 시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전략이었죠. 
    시와 함께 인생사 온갖 고비를 다 겪어낸 것이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해석한 평론가 김승환 교수는 그녀를 ‘자신을 불사르는 한 송이 꽃’이라고 은유했다. 그녀는 ‘성 충동’과 ‘죄의식’에서 에너지를 끌어내어 지고한 ‘모성성’과 이상적 존재인 ‘아란에 대한 동경’으로 승화시키는데, 이 4개의 패스워드가 있어야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옥 시인은 최근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미호 강변에서 건져올린 시와 풍경들로 삶의 애환을 달래는 영상을 엮어가고 있다. 화염이나 다름없던 청춘의 불길을 식혀준 미호천에 대한 보답과 감사의 방식이라고 했다. 청주 국제 에코콤플렉스 소속 환경교육활동가이기도 한 그녀가 선택한 최종 소임은 자연 섬김과 환경 예찬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우리 지역의 물길인 미호천, 미호 강변은 천혜의 힐링 장소입니다. 전 국민의 쉼터, 순례지가 되도록 미호천을 널리 알리는 일에 전념할 겁니다.”
    지난 가을에는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미사모(미호강변사랑모임)회원들과 함께 강변마을 배너시 전시회를 6차례 열기도 했다.

강변 시집 ‘미호강 아라리’를 출간하다
    “미사모 회원을 더 찾고 있습니다. ‘강변순례 프로그램’에 초대해서 물길 사랑을 체감하는 길을 닦아보려고요. 함께 미호 강변을 거닐면서 시도 암송하고 생태 관찰도 하고 체온도 나누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미호 강변 사랑 ‘미사모’의 회장인 그녀는 작년에 ‘강변 시집’, ‘미호강 아라리’를 출간했다.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미호천에 빚진 자로서 너무 당연한 공양물이란다. 시집에는 그녀가 미호천에 바쳐온 연작시 64편이 실려있다. 독자들이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지류의 명칭이나 마을 이름까지 익힐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석도 달아두었다.
    “이제 욕망과의 이별에 듭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나이 들수록 정신의 시선은 높아지는데 육체의 보폭이 더 느려집니다. 이제 욕망이라는 이름의 오아시스. 그 마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지금 내 발이 닿고, 내 손에 잡히는 인연들과 소박하고 확실하게, 사랑하고 교감하는 일. 그것으로 만족할 때가 되었지요.
    충청의 물길 미호천을 알리는 유튜브 채널 <미호아라리> 운영도 물길을 섬기는 시인의 본분이라는 옥근아 시인.  최근 시집 ‘미호강아라리’ 72쪽에 실린 시를 만나 보면 그녀가 원하는 욕망과의 이별은 이미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미호천 시인 옥근아. 그녀의 시혼이 한층 더 맑고 힘차지면 물길 섬김 운동이 충청을 넘어 전국으로 파동치리라는 예측은 점점 뚜렷해질 것이다.

미호천 따라 (시인. 옥근아)
    올 가을에는 색을 버리자
    색을 버리고 또 한 번 맑아지자

    담담한 저 물줄기
    흐르는 구름을 담고, 홀로 가는 새를 담고 
    물위로 흩어지는 풀씨
    이마에 풀씨를 묻힌 채 
    물결에 실려 가는 하현달

    그저 오는 무엇도 손사래 치지 말고
    안겼던 기슭자리 돌아보지 말자
    옥양목 한 필 같은 
    저 강물에 얼굴을 씻고 
    풀씨처럼 가벼워진 청춘을 물위에 뿌리자 
    사랑에 나, 오래 몸 절었어도 

    손대지 않은 원단같이
    오래 뒤척였으나
    이제는 반짝이는 저 물줄기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