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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2020-10-07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콩트>
내로남불
'글. 박순철'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갈 씨! 고속도로에 꽉 들어찬 차량이 움직일 줄을 모른다. 겉모습은 태연한 것 같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정부에서는 되도록 추석 명절에도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어느 집 멍멍이가 짖느냐는 듯 귓등으로 흘려듣고 고속도로에 몰려든 사람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올해는 옛날의 역병보다도 더 무서운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연이어 내린 폭우와 태풍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소갈 씨가 사는 시골 마을은 그나마 수해와 태풍의 피해가 적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코로나19는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 
    추석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정부의 시책을 따르자면 아들을 내려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갈 씨 혼자 잔 올리고 절하고 하면 되기야 하겠지만, 도저히 그 짓은 서글퍼서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올해 추석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하고 서울 아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아들 며느리는 말은 안해도 쾌재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해마다 명절이면 본가와 처가를 오가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시달렸는데 올해는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싶다. 또 한 사람 있다. 소갈 씨 아내다. 혼자 송편 만들고 전 부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나 추석에 시골에 내려갈래요.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손자 전화다. 녀석들이 집에 내려오면 무엇이 그리 좋은지 천방지축 고샅을 뛰어다녀서 민망할 때도 있지만 활기를 느끼곤 했었다. 
    “안된다. 나도 우리 규찬이 규필이 많이 보고 싶지만, 참는 중이란다. 코로나19 잠잠해지면 그때 내려오너라.”
    “할아버지 나 알밤 줍고 싶어요. 그리고 야용이 새끼 낳았어요. 한 마리 서울로 가지고 올 거예요.”
    “그래 알았다. 할아버지가 밤 많이 주워 놓았다가 우리 규찬이 오면 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늙은이들을 보고 싶다고 하니 고맙기만 하구나. 보고 싶기로 말한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더 보고 싶어 한단다.’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갈 씨의 마음이 짠해진다.
    전에는 소갈 씨 혼자 벌초를 했었지만, 아들이 대학교 다닐 때부터 벌초를 거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위로 이발하듯 듬성듬성 쥐 파먹은 것처럼 제대로 깎지 못하더니 이제는 혼자서도 봉분은 물론 훤하게 갓 돌림까지 할 줄 안다. 광에 있는 예초기를 꺼내어 휘발유 넣고 시동을 걸어보니 이내 걸린다. 마음 같아서는 짊어지고 벌초를 하고 싶지만 큰일 날 소리, 저 지난해 한번 해보려고 대들었다가 애꿎은 예초기 날만 부러트리고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시골에는 젊은 사람이 많지 않으니 돈을 가지고도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어렵다. 농협에서 벌초를 대신해주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면 소재지에 있는 농협으로 향했다. 아들 친구가 영농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부탁할 생각이었다. 정부의 권고 사항이기도 했다.
    “아버님! 나오셨어요. 코로나19가 무척 심해요. 마스크 드릴 테니 꼭 쓰고 다니세요.”
    “깜빡했네. 동네에선 늘 그냥 다녀서. 산소 벌초해주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가?” 
    “네, 어제 만근이 전화 받았어요. 벌초 해달라고해서 오늘 일꾼들이 나갔어요. 그리고 벌초 비용도 보내왔고요.”
    “그려?”
    “네. 추석에도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랬어. 공연히 왔다가 코로나19라도 따라오면 어쩌겠나 그래서.”
    “잘하셨어요. 이제 사그라질 때도 됐는데 그렇게 기승을 부리네요.”
    “그래 산소에 가보지 않아도 되겠나?”
    “우리 일꾼들이 산소 다 알고 있어요. 좀 더 신경 써서 하라고 했으니 가보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버님 점심시간도 되고 했으니 식사하고 들어가세요. 제가 사 드릴게요.”
    “아니야, 동네 사람이 저쪽 약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소갈 씨는 농협을 나오면서도 아들 녀석이 기특하기만 했다. 아직 서울 생활에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손자 둘 학비며 살림살이가 빠듯할 텐데 애비를 걱정해주는 그 마음이 더없이 고마웠다. 



    추석 전날이 이처럼 쓸쓸해 보기는 처음이다. 이웃집 김 영감네 둘째 아들 길동이네 가족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승용차에서 내려 선물꾸러미를 양손 가득 들고 발걸음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이 부럽다기보다 코로나19가 따라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남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라고 할 만큼 어리석지 않은 소갈 씨는 못 본체 집으로 들어온다.
    부부는 ‘척 하면 삼천리’라고 하더니 소갈 씨 부인, 잔뜩 풀이 죽어 들어오는 뒷모습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한 그가 녹두전 부침개와 막걸리 한 병을 내왔다.
    “뭘 그리 심각하게 바라봐요?”
    “응, 아무것도 아니오.”
    “아니긴 뭐가 아녀요. 혹시 애들 오나 하고 동구 밖 내다보지 않았어요?”
    “애들은 내가 오지 말라고 했으니 오지 않을 거요.”
    “그래요. 올 추석은 우리끼리 오붓하게 지냅시다. 애들이 오지 않으니까 내가 한결 편해서 좋네요.”
    “정말 편해요?”
    “그럼요. 아무것도 안 해서 너무 좋아요.”
    “이런 마누라 하곤….”
    “청승 그만 떨고 이 술이나 잡숫고 한잠 주무시구려.”
    이제 별 방법이 없다. 아들네 내려오지 못하게 한 게 후회되긴 했지만,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을 꾹꾹 눌러 참고 막걸리 한 컵을 들이켜니 뱃속이 알알한 게 조금 가라앉는다. 한 병을 다 마시고 나니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임아….”
    손자 녀석이 조정해준 핸드폰 벨 소리가 단잠에 빠진 소갈 씨를 깨웠다. 
    “할아버지! 저 규찬이요. 우리 지금 괴산 읍내 왔어요. 조금 있으면 들어가요.”
    “뭐, 괴산까지 왔다고?”
    “네. 할아버지!”
    “이 녀석들 오지 말라고 했는데 뭣 하러 와?”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나하고 형이 가자고 막 졸랐어요.”
    단잠을 깨어서인지 소갈 씨 얼굴이 소태나무 씹은 표정이다. 보고 싶던 손자 녀석들이 오니 좋기는 한데 정부의 권유 사항을 따르지 않는 자식이 원망스러웠다. 남에게는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던 소갈 씨도 자식, 아니 손자 앞에서는 그 잣대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여보! 여보! 마스크 좀 찾아봐요. 이 녀석들 마스크나 제대로 쓰고 오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