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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소리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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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소리
'우리소리박물관장 최상일'

    소리에도 우리 것이 있었다. 박물관은 보통 눈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을 모아두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소리와 함께 였다. 어떤 소리는 정겨운 이웃의 인사말이, 어떤 소리는 잠시 귀를 막고 싶은 소음이라 할지라도 모든 소리는 결국 모두의 일상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소리를 기록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기억한다는 것이고, 우리의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 하루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소리박물관 앞뜰에서 소리를 감상하고 있는 최상일 관장. 우리소리박물관 앞뜰에는 언제나 정겨운 향토민요가 흘러나온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다닌 지 어느덧 30년
    “이 소리는 경상북도 어느 마을에서 할머니가 아이를 재우는 소리입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이 멘트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봄직하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의 최상일 관장은 평생을 사라져 가는 향토민요와 함께해온 사람이다. MBC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프로그램의 PD로 일하며 약 20여 년간 소리를 모아 온 그는 어느덧 향토민요 전문가가 되었다.
    민요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가 소리를 모았다는 그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모아 온 나이든 어르신들의 노래들은 박물관을 채우고 남을 만큼 그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소장한 3만여 곡의 향토민요 중 약 1만 8천여 곡은 그와 그의 MBC 동료들이 [한국민요대전] 프로젝트를 통해 모은 자료를 기증받은 것이다. 최 관장은 소리를 수집할 당시를 떠올리며 자신의 일상은 거의 민요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덧붙였다.
    “소리를 들으면 어디서 언제 모은 소리인지 단번에 알아요. 어르신들이 소리를 하던 장면도 기억이 나니까요. 그 정도로 저에게는 애착이 큰 것이 향토민요입니다. 전국에 안 다닌 곳이 없어요. 소리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산 너머 물 건너 수집을 하려 다녔죠.” 바야흐로 30여 년 전,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며 여러 가지 음악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던 최상일 PD는 어느 날 자신이 어릴 적 상여소리가 들리면 밥을 먹다가도 뛰쳐나가 쫓아가곤 했던 기억을떠올리며향토민요를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조사를 시작하니 향토민요가 담긴 출판물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특집 프로그램 기획안 정도로 시작된 아이디어가 자료 조사를 할수록 역사적인 기록을 향한 프로젝트로 변화해가게 되었다.
 
左) 우리소리박물관에 전시된 향토민요. 스피커 모양 옆에 위치한 작은 스피커를 통해 향도민요를 들을 수 있다.
右) 영상과 함께 듣는 향토민요. 이 외에도 우리소리박물관에는 향토민요를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수집을 하면 할수록 노래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이거 큰일이다 싶으면서도 신이 났죠. 사실 처음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는 몇 차례나 반대에 부딪혔어요. 재미가 없다 이거죠. 그런데 저는 이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까스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된 거죠.” 그렇게 시작한 향토민요 수집. 전례가 별로 없는 일이다 보니 전국의 이장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해가며 직접 조사를 실시해야 했다. 당시에 설문조사를 통해수집된정보만 해도 취재팀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또한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모두 고령층이다 보니 서둘러 돌아다니지 않으면 그 사이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기에 현지 출장을 잠시도 늦출 수가 없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죠. 노래를 녹음하고 나서 테이프를 복사해 갖다드리겠다고 약속한 어르신이 있었는데, 서너 달 뒤에 녹음 테이프를 들고 가니 그 사이에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제가 더 빨리 갔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민요가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더 빨리 자료를 수집해야겠다는책임감이생겼던 것 같아요.” 
우리의 소리가 현대인과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한국의 향토민요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아주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우리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여럿이 어울려 일을 했기 때문에 향토민요 역시 여럿이 함께 부르는 웅장한 노래가 많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집단적인 노동요가 풍부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저는 한국인들이 노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향토민요 수집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제 추측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너무 좋아하고 흥이 넘치다 보니 평상시에 일을하면서도노래를 안 하고는 못 배겼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고 세계시장에서 케이팝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잖아요. 노래의 모양은 바뀌어도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질은 바뀌질 않는 거죠.”
 
최상일 관장의 오른쪽에 위치한 서랍장 밑에는 작은 서랍문을 열면 향토민요를 들을 수 있는 재미난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최상일 관장은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지금의 우리 음악문화는 과도하게 서구화되어 균형을 잃었고, 우리만의 훌륭한 전통음악 자원이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갈수록 전통문화에도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악도 전통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서 독특한 한국의 음악을 만들어낼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도 버리지 않고 있다. “먹고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람들이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죠. 여행에서 음식으로, 집가꾸기에서 정원 가꾸기로, 문화의 트렌드도 계속 변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음악문화도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믿어요. 그 과정에서 향토민요의 잠재력도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겠지요.”
    그는 지금도 자신이 모으고 보존한 향토민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창덕궁 맞은편에 아담한 한옥으로 지어진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그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우리의 소리가 누구나 즐기는 소리가 되도록 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박물관이 장차 할 일 중에는 향토민요동호회를 만들어 다 같이 민요를 배우고 부르는 계획도 있고,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같은 첨단 기술을 적용하여 관람객들이 사라져버린 향토민요를 실감나게 보고 들을 수 있게하는 계획도 있다.
    자신이 일평생 모아 온 소리가 박물관에 전시가 된다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그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초대 박물관장임기를 마친 뒤에도 필요하면 언제든 향토민요를 고르고 다듬고 설명하는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오래 전 대지 위에 울려 퍼지던 이 땅의 수많은 소리가 한 사람의 열정을 만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풍부한 기록이 되었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 그 기록을 이어받아또다른 우리 문화의 역사를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