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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숲에서 깨어나는 몸

2019-05-28

라이프가이드 여행


충북 어디까지 가봤니
생동하는 숲에서 깨어나는 몸
'옥천 둔주봉과 화인산림욕장'

    산등성이부터 산기슭까지 온통 연둣빛 신록이다. 숲으로 가는 길은 깊은 봄으로 이어진다. 숲을 뚫고 내리쬐는 햇볕 기둥이 오솔길 옆 새잎에 닿았다. 초록빛 불을 밝힌 것 같아 ‘잎초롱’이라고 불렀다. 생동하는 숲이 몸을 깨운다. 숲을 걷는 사람이 빛난다.
등주봉, 둔주봉
    대청호 오백리길 중 옥천군 안남면사무소에서 등주봉(둔주봉) 전망대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피실로 내려와 대청호 물가에 난 길을 따라 금정, 고성을 지나 독락정까지 와서 다시 안남면사무소에 도착하는 약 11㎞ 코스를 걸을 계획이었는데 대청호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물가 길은 포기해야 했다.
    안남면사무소에서 등주봉(둔주봉) 전망대까지 갔다 오는 약 5㎞ 정도 되는 길을 걷기로 하고, 여건이 되면 화인산림욕장 산책길을 한 바퀴 도는 약 4㎞ 정도 되는 길을 더 걷는 것으로 일행과 뜻을 맞췄다. 
 
등주봉(둔주봉) 전망대에서 본 풍경

    안남면사무소에 차를 세우고 면사무소 앞 넓은 터에 있는 커다란 배 조형물로 발길을 옮긴다. 뱃머리에 사람 형상의 조형물이 등주봉(둔주봉) 쪽을 바라보고 있다. 평범한 시골마을 면사무소 앞 빈터에 있는 커다란 배 조형물이 조금은 쌩뚱맞게 느껴졌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이곳에 배가 오갔고, 나루터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배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고, 배를 매어두던 바위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배바우’라고 불렀다. 지금 그 바위는 볼 수 없다.
     ‘배바우’로 불리는 이곳을 포함한, 현재 공식적인 마을 이름이 연주리다. 연주리에도 배를 뜻하는 ‘주(舟)’자가 들어간다. 등주봉(登舟峯)도 마찬가지다.
등주봉의 원래 이름은 둔주봉이다.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라고 해서 둔주봉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둔주봉 정상부근에 옛 성터가 남아 있다. 배 조형물 구경을 끝내고 점심을 먹는다. 옥천에서 당연히 먹어야 할 것은 올갱이국이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며 길로 나선다. 
 
01.대청호오백리길 이정표. 등주봉(둔주봉) 전망대 가는 길     02. 등주봉(둔주봉) 전망대로 가는 숲길   03. 안남면사무소 앞 넓은 터에 있는 배 조형물
 
생동하는 꽃?잎?숲, 걷는 자는 자유다
    햇볕 잘 드는 산골짜기 마을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산기슭 밭과 집 사이로 구불거리며 난 길 때문에 풍경이 깊어진다.  풀꽃이 길가 땅에 엎드려 피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생명들이다. 허리를 굽히고 때로는 무릎을 꿇고 그 작은 생명을 본다. 이름 모를 작은 꽃, 차라리 이름 없는 그냥 ‘들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땅을 뚫고 솟아난 생명의 자유처럼 이름 없는 ‘들꽃’이어야 했다.
   산에 마음대로 피어난 산복사꽃도 그렇다. 산허리를 끊고 낸 길을 따라 걷는데 길 위 산에도 길 아래 산기슭에도 산복사꽃이 화사하게 빛난다. 사람 손에 단절된 그곳에도 자연은 그 이름대로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한다.
   길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통로이지만, 때로는 자연의 호흡을 끊는다. 길 때문에 풍경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산복사꽃 흐드러진 풍경을 끊은 이 길은 인공의 횡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과 인공의 공존을 생각하며 걷는 길, ‘한반도 전망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길을 숲으로 안내한다.
    밖에서 보던 숲도 안에서 보는 숲도 다 연둣빛 물이 올랐다. 숲을 관통한 햇볕 기둥이 새잎을 비춘다. 빛이 닿은 새잎이 반짝인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둠이 된다. 어둠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초록 잎이 도드라진다. 초록빛 불을 밝힌 것 같다. ‘잎초롱’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잎초롱’ 사이 몇몇 분홍빛 꽃은 불꽃같다.
    어느 것 하나 솟구치지 않는 게 없다.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나는 생명이다. 생동하는 기운이 사람 몸을 휩싼다. 그 숲을 걷는 사람의 몸도 깨어난다. 그렇게 걸으며 나를 잊는다. 걷는 자는 자유다.
거대한 나무들의 숲 
    등주봉(둔주봉) 전망대에서 한반도를 닮은 풍경을 본다. 굽이치는 물줄기와 산줄기가 만든 풍경이 좌우가 바뀐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 한반도 지형 오른쪽 물 건너편에 고성을 돌아 독락정으로 이어지는 물가 길이 서사적으로 이어진다. 한반도 지형 왼쪽 물 건너편은 종미리 마을이다. 옛 시골마을 풍경이다. 물가에 펼쳐진 마을 밭에는 지금도 보리가 자라고 있을까?
    조선시대 사람 송시열이 옥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본 풍경 중에 인상에 깊게 남은 게 보리밭이었나 보다. 그가 보리밭이 있는 풍경을 보고 이름을 붙인 것 중 하나가 맥기(麥基)다. 독락정 앞에 펼쳐진 풍경에도 송시열이 보았던 보리밭은 있었을까? 옛 사람의 시선을 거두고 돌아선다. 시간이 어중간했지만 화인산림욕장으로 향했다. 
    50만㎡의 산에 메타세쿼이아, 낙엽송, 잣나무 등 10만 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입구부터 반환점(정상부근)을 지나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약 4㎞의 산책길이 있다. 시계방향으로 걷는 게 더 수월하다는 안내문구도 보인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길을 걷다보면 길은 양쪽으로 갈라진다. 어느 쪽으로 가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왼쪽으로 올라간다. 소나무가 있는 숲길을 지나 더 올라가면 반환점이 나온다. 반환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안내면이 훤히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갈지(之)자로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올라오는 길 보다 조금 더 길다. 소나무 밤나무 낙엽송 메타세쿼이아나무 편백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만든 숲에서 걸어 나온다. 하늘을 가린 거대한 나무들이 만든 숲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돌아가는 길, 뒤돌아 본 숲 위로 하얀 달이 떠올랐다. 해와 달이 한 하늘에 있는 풍경 속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