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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초겨울 나무 위 새의 숙명
'옛 그림이 전하는 지혜'

나뭇가지에 잎사귀 하나 달려 있지 않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쯤일 것이다. 둥근달이 거무스름한 밤하늘을 싸늘하게 비춰준다. 달빛이 골목 구석구석을 비출 정도로 환해질 시간이라면 한밤중에 가까울 것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의 한밤은 서리 맞을 때처럼 한기가 든다. 이렇게 추운 날 새 한 마리가 마른 나뭇가지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최소한의 온기도 뺏기지 않으려는 듯 날갯죽지에 부리를 묻은 채 고단한 잠에 빠져 있다. 볼수록 처량하고 안쓰러워 거두려는 눈길을 붙잡는 그림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 조속(趙涑·1595~1668)이 그린 ‘월야수금도(月夜睡禽圖)’는 낙엽이 다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는 날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종류의 그림을 숙조도(宿鳥圖)라고 부른다. 잠자는 새 그림이라는 뜻이다. ‘월야수금도’는 ‘달밤 고목 위의 새’라는 뜻이지만 번거롭지 않게 숙조도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잠자는 새를 그리는 것이 무슨 특별한 초겨울의 정서를 불러올까 싶지만 숙조도같은 그림은 예외다. 새는 꽃피는 봄날에 등장해야 제격이다. 생명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봄의 숲속에서 암수가 정답게 날아다녀야 어울린다. 새를 그릴 때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가 아닌 새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를 쌍으로 그린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월야수금도’에서는 봄날도 아닌 초겨울, 그것도 새 한 마리만 앙상한 가지에 외롭게 앉아 있다. 이런 새의 모습은 계절감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찬 서리 내린 늦가을에도 안온하게 쉴 집도 없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해야 하는 것이 새의 숙명이다. 따라서 늦가을 나뭇가지 위에서 고단한 잠에 빠진 새의 모습은 한 생애에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아내야 하는 생명체의 수난을 시각화한 것 같다. 사람의 삶도 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건강을 잃어서 누군가는 짝을 잃어서 절망하고 힘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이 다하는 날까지 온전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채워야 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자들의 운명이다.
숙조도는 조속을 비롯한 조선 중기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다. 그렇다고 해서 조속이 당시의 유행을 반영해 숙조도를 그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 많은 새의 모습 중에서 하필이면 한뎃잠을 자는 한 마리 새를 선택한 이유는 아마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애상함을 대변해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속의 아들 조지운(趙之耘)도 아버지를 닮아 숙조도를 남겼지만 조속의 작품만큼 쓸쓸하지는 않다. 젊은 아들의 관심사는 나이 든 아버지가 느꼈을 삶의 애상함이 아니라 화폭 속에서 이뤄져야 할 구성미나 화면 분할 등 작품의 완결성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속은 까치, 박새, 할미새 등의 산금류와 기러기, 백로 등의 수금류를 주로 그렸다. 다른 누군가를 헤치기보다는 제 한 몸 간수하기도 바쁜 애잔한 생명체들이다. 그림 속 새를 보면 연약한 몸으로 추운 밤을 보내려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싶어 자꾸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계절 때문에 마음이 허허로워서인지 모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라는 시구를 자꾸 음미하게 되는 계절이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지 이 겨울을 잘 견디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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