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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 남한강

2018-08-03

문화 문화놀이터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 남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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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의 이목이 모였던 평창 올림픽이 패럴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모든 일정은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현장에 가보진 못했지만 TV를 통해 보는 강원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늘 곁에 있어 알지 못했던 것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특히 높은 산,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강이 만나고 흐르고 서로 어우러져 휘돌아가는 광경은 강원도가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자연경관인 것 같다. 지도를 펴들고 손으로 짚어가다 보니 원주가 보인다. 경기도와 충청북도에 맞닿아 있고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차령산맥이 남동부로 뻗어 내려간 지형.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 문막평야를 만들고 마침내 여주 여강으로 돌아나 가는 곳. 그곳에 자리를 잡은 원주로 새 봄 여행을 계획해본다. 유홍준 선생이 그의 책,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언급한 유명한 폐사지들도 있으니 원주로의 여행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서울에서 두어시간 남짓, 가는 길도 한결 수월하다.



옻공예 제품과 한지, 원주를 빛내는 무형문화재들
    원주에는 봉산동과 소초면에 옻과 관련된 문화센터들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까운 ‘원주옻문화센터’를 들러보기로 한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에서는 옻이 산후통에 좋고 회충을 없애며 3충을 죽인다고 말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옻칠기 공예품들이 좀이나 곰팡이 하나 없이 완벽한 상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도 같다.



    원주에서 특히 옻공예가 발달한 것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옻산의 함량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성분 분석 결과를 보면 타 지역의 옻칠에 비해서도 원주옻의 옻산이 72.5%로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생산되는 옻공예품들은 수출도 잘 된다고 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기능보유자, 김봉룡 선생도 이곳을 주 무대로 활동했다고 한다. 또한 현재는 그의 후계자 이형만 선생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전시장을 오르내리며 접시, 옷장, 수저세트 등 작가들의 작품부터 생활용품들을 둘러본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그 빛깔과 효능 때문에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수저세트 하나로 만족하고 한지테마파크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주에서 한지가 발달한 것은 옻과 마찬가지로 한지의 주원료가 되는 닥나무가 이곳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된 사실이다. 원주에서는 1950년대까지 15개 이상의 한지 공장이 번성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대량생산이 가능한 양지가 들어오자 사라졌다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김영연 장인과 영담스님의 노력이 끊어졌던 한지의 맥을 되살려 놓았다. 전시관 한쪽을 돌다 보니 한지로 만들어진 피아노와 작품들이 있다. 볼수록 한지의 매력에 빠져드는 듯하다. 전통 한지에 인쇄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왕오천축국전』, 묘법연화경 등도 볼 수 있었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만든 저고리나 버선, 망태기 등을 보고는 가볍고 얇은 종이로 일상생활용품을 만들어 쓴 조상들의 지혜에 또 한 번 감동한다.


01~02. 원주한지테마파크는 한지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한지의 복합문화공간이다.
03. 남한강은 원주에서 섬강과 만나 문막평야를 만들고 마침내 여주 여강으로 돌아나간다.
04. 법천사는 신라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로, 그 터에는 탑비를 비롯하여 지광국사현묘탑지와 부도전지,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원주의 역사문화 순례길을 따라

    이번엔 원주의 산하를 만나볼 차례다. 차를 타고 서둘러 도심을 벗어난다. 원주시에서는 폐찰된 불교의 역사문화 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길들을 모아 역사문화순례길 5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2코스는 우리나라 12조창 중 하나였던 흥원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흥원창은 고려시대 원주와 횡성, 평창, 정선, 영월 등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보관했다가 뱃길로 한양까지 운송하던 조창으로 조선후기까지 운영되었다. 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길목을 보고 있노라니 이곳에 왜 조창을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 옛날에는 강이 훌륭한 도로 역할을 했을 테니까. 지금은 길가에 안내석만이 옛 조창터라는 표식을 하고 있다. 큰 물자가 드나들었을 마을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본다. 분명 시끌벅적, 생기가 도는 마을이었으리라. 그 시절 마을을 상상해보니 괜히 마음이 흡족해진다.    


원주의 역사문화 순례길을 따라

    이번엔 원주의 산하를 만나볼 차례다. 차를 타고 서둘러 도심을 벗어난다. 원주시에서는 폐찰된 불교의 역사문화 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길들을 모아 역사문화순례길 5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2코스는 우리나라 12조창 중 하나였던 흥원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흥원창은 고려시대 원주와 횡성, 평창, 정선, 영월 등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보관했다가 뱃길로 한양까지 운송하던 조창으로 조선후기까지 운영되었다. 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길목을 보고 있노라니 이곳에 왜 조창을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 옛날에는 강이 훌륭한 도로 역할을 했을 테니까. 지금은 길가에 안내석만이 옛 조창터라는 표식을 하고 있다. 큰 물자가 드나들었을 마을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본다. 분명 시끌벅적, 생기가 도는 마을이었으리라. 그 시절 마을을 상상해보니 괜히 마음이 흡족해진다.    


신들의 숲, 성황림에 서서

    사적 제466호 법천사지 가는 길은 호젓한 시골길이다. 장식 없이 토단 위에 우뚝 선 당간지주를 지나 500여 미터 걸어가자 드디어 법천사지다. ‘진리, 즉 법이 샘물처럼 솟는다’고 하여 법고사라고 불렸다는 법천사. 신라 성덕왕 24년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가 머물면서 큰 사찰로 변모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지광국사의 행적이 기록된 현묘탑비가 있다. 거북의 머리는 용모양이고 등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이 탑비가 유명한 것은 비신의 섬세한 조각 때문이다. 비신의 양옆을 살펴본다. 국보 제59호로 지정된 것에 걸맞게 연꽃과 구름과 용이 화려하게 새겨져있다. 지붕에 해당하는 상륜부 또한 연꽃과 구름 문양이 디테일하게 조각되어 있다.
    표지판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이번에는 사적 제168호 거돈사지가 나온다. 7500여 평에 이르는 이 사찰은 발굴 조사 결과 9세기경 신라 후기에 지어진 후 계속 확장되다가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거돈사지의 빼놓을 수 없는 보물 제190호 원공국사탑. 거돈사를 창건한 원공국사 지종의 사리탑으로 이곳에는 2007년 복원된 탑이 놓여있고 본래의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보존 중이다. 원공국사는 고려의 천태학을 계승하여 의천이 천태종을 일으키는 데 초석을 다진 공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거돈사는 훗날 의천이 천태종을 열었을 때 영암사, 지곡사 등과 함께 천태종의 기반사원이 되었다. 거돈사터 동남쪽에 자리 잡은 보물 제78호 원공국사탑비는 고려 현종 16년에 세워진 것으로 그의 행적을 기리는 비문으로 되어 있다. 돌거북 받침대와 용머리 지붕돌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고려시대 석조미술문화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에 찾은 폐사지인데다 예전 누렸을 사찰의 영광을 생각해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남한강변을 조금 벗어나 원주의 명소, 천연기념물 제93호인 원성 성남리 성황림에 가보기로 한다.


01. 보물 제750호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02. 성황림에는 90여종의 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있으며 치악산의 성황신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던 서낭당이 있다.



남한강변 폐사지들을 돌아보며

    56231㎡의 넓이에 90여종의 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있다는 성황림. 조선 말기부터 치악산의 성황신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던 서낭당이 있는 곳.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성황제를 지내오며 숲을 보호하고 있다. 과연 우거진 숲은 그들이 부르는 대로 신이 사는 숲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수백 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분위기는 예사롭지가 않다. 숲으로 조르라니 난 길을 걷자니 신비로운 기분이 든다. 그리고 눈앞에 등장하는 서낭당. 이곳에서는 아직도 매년 4월 8일과 9월 9일에 제를 지내고 있다. 신이 산다는 숲에 오니 괜히 마음이 경건해진다. 지난 성황제의 흔적을 남긴 금줄이 아직 그대로 있다.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빌었을 소원들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위에 나만의 작은 소원 하나도 얹어본다.
    숲이 조금 소란해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신이 사는 숲에 내리는 겨울 끝자락의 눈. 눈이 쌓인 성황림과 서낭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사이 소리도 없이 눈은, 그리고 시간은 겹겹이 두께를 더해가며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