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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차경, 창과 문으로 보는 밖

2018-10-19

문화 문화놀이터


한옥의 차경, 창과 문으로 보는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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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편안히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적과 용도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자연의 재료를 이용하고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이 고려되어 지어진 한옥은 여러 가지 목적과 용도에 맞게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의 모습은, 자연의 변화와 조화로움으로 구성되고, 외형적으로는 골격을 구성하는 기둥과 지붕,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집안에서 밖과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문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이 쾌적한 공간으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집안에서 자연의 환경을 이용하기 위한 창문이 있어야 한다.


문, 밖으로부터 자연을 끌어들이다

    한옥에서의 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출입을 위한 문이며 또 하나는 태양의 빛과 시원스럽고 상쾌한 바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이다. 태양은 조명이 없던 시절 실내를 밝혀주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태양의 적외선 광선은 실내를 쾌적하게 살균해 주었다. 문에는 여름과 겨울에 공간을 구분하기도 하고 합하기도 하는 들어열개문(사분합문), 미닫이문을 속문으로 하고 덧문을 다는 방문, 공간의 종류에 따라 대문, 부엌문, 다락문 등 다양한 이름과 용도의 문들을 만들어 각자의 기능을 다하도록 꾸며져 있다. 이처럼 한옥에는 기능상 출입을 담당하는 문과 태양빛과 바람을 받아들이는 창문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것에 더해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는 차경이라는 중요한 역할도 하였다.


보물 제1764호 창덕궁 낙선재. 한옥에서는 문을 그냥 문으로 보지 않고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액자로 봤다.


창문, 옛 사람들의 마음이 어리다

    창문에는 전기 조명이 없던 시절, 문은 열리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으나 내부를 환하게 밝혀주던 광창(光窓)이 있다. 광창은 다락이나 창고와 같이 보관의 기능을 하는 공간에 만들어졌다. 아울러 광창은 북쪽에 있는 방이나 방의 규모가 커서 창문의 창호 창만으로는 태양의 빛을 충분히 받기에 모자라다고 판단될 경우에, 도편수는 아래쪽에는 광창을 두고 중인방(한옥의 벽을 꾸미는 골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하단, 중단, 상단으로 가로지르는 수평목부재를 거는데, 이 중 중간을 가로지르는 수평목부재를 말함) 위에는 들창을 꾸며서 방의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들창이란 격자살이나 세 살의 창살로 꾸며진 문짝을 옆으로 뉘여 달고 상부에 돌쩌귀를 두는 창문을 말한다. 들창문은 일어서서 먼 곳을 응시할 수 있는 창문으로 건물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위치가 정해진다. 행랑채에서는 하인이 대문 밖에 찾아온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해 밖을 향해 작은 들창이 만들어졌다. 안채에서는 며느리가 기거하는 날개채에도 들창이 꾸며지는데, 시집온 새댁이 고향의 부모님과 어려서 놀던 고향마을을 그리워하며 들창을 들고 창문 넘어 담장 밖을 내다보았다고 한다. 출가외인이라 하여 좀처럼 친정집에 가기 어려웠던 그 시절, 한옥의 들창은 그리움과 고달품의 애환을 어루만져주던 애틋한 바람이 통하는 곳이었다. 들창 너머 먼 산을 바라보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는 “애기야! 들창을 그리 오래 들고 밖을 보면 감기 걸려 안 된다”라고 하였다 하니, 당시 고부간의 미묘한 감정다툼을 이야기하는 대상으로도 창문은 우리에게 사연이 많은 건물의 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들창은 배려의 창문으로 보이지만 돌쩌귀가 위에 있어 창문을 열고 붙잡지 않으면 자동으로 닫히게 되니, 들창을 만들 때는 배려와 절제의 조화를 배우게 하려는 조상들의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01. 보물 제450호 안동 의성김씨 종택. 하나의 벽에 꾸며진 다양한 문들의 어울림과 조화가 돋보이는 집이다
02. 보물 제209호 대전 회덕 동춘당.대청의 앞면·옆면·뒷면에 쪽마루를 내었고 들어열개문을 달아 문을 모두 열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차별 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03.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 외부 연못으로 내민 부분에만 亞자살문을 달고, 그 밖의 다른 곳은 모두 띠살문으로 하였으며,
       들쇠에 매달면 사방으로 트이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04. 보물 제413호 독락당 좌측 담장에는 신방목을 갖춘 대문 구조에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자옥산 계곡에서 흐르는
       자계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게 했다.



한옥, 외부의 경치를 차경하다

    좀 더 자세하게 내부에서 창문이나 문을 통하여 밖을 바라다보자. 먼저 문의 경우는 건물 내부에서 밖은 쉽게 조망되지만, 외부인에게는 내부의 모습이 쉽게 보이지 않도록 위치해 있다. 예를 들면, 방문의 위치가 높은 기단위에서 마당 쪽으로 내려다보도록 꾸며져 있고, 외부에서 가까이 다가오면 보일 것 같지만, 툇마루 위의 난간이나 방문 아래 위치한 머름판에 의해 시선의 각도가 위로 향하면서 방에 앉아 있는 모습의 내부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다. 안채에서 방문을 열면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앞마당에 만들어진 맨드라미, 봉숭아, 분꽃 등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작은 화계를 보며 계절을 만끽하고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장독대 위에 얹어 말려 먹던 고추장 바른 파래, 먹음직스런 감말랭이, 찹쌀풀 바른 갖가지 부각 같은 음식을 보면서 밖의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채 문을 통해 밖을 보면 대문으로 들어오는 손님들도 볼 수 있고, 상류 주택에서는 사랑 마당에서 집안일하는 머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일을 지시하기도 했다. 간혹 상류 주택의 사랑채 끝에 자리한 문은 금강산이나 설악산 같은 아름다운 곳의 자연풍경 구경이 어려웠던 시절, 집주인이 작은 화단에 기암괴석을 놓고 대리 만족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이러한 위치에 창문이나 문이 설치되고 꾸며지는 것이 한옥의 기능성과 효율성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은 추녀와 공포가 꾸며져 있기에 겉으로 보는 크기에 비해 내부 공간이 매우 작다. 따라서 지금처럼 장식품이나 아름다운 명화로 꾸며놓기엔 공간 활용에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선조들은 이러한 제한된 내부 공간의 답답함을 창문을 만들어 외부의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 차경(借景)하였다. 한옥의 창문을 열면 몇 년이고 벽에 걸린 채 고정된 그림과 장식품의 모습이 아닌, 사계절이 변화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품어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촉촉한 봄비가 내리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낙숫물 소리에 우수에 잠기었을 것이고, 보름달이 휘영청 저 산마루에 걸릴 때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실루엣의 아름다움도 부족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부드러운 달빛 사냥을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수많은 시나 노래 중에서 엿볼 수 있는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구절, 가슴이 저며오는 그리움, 이 모든 절절한 이야기들이 창문과 자연과의 조화가 이룬 대화속에서 느껴지는 멋이 아닐까 한다. 창문은 이처럼 변화하는 사계절을 감상하게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힘입어 내면의 정서를 힘껏 분출하며 누구나 한 번쯤 시인이 될 수 있는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또 다른 매력적인 기능을 품고 있었다. 현대처럼 무선 통신시설이 없던 한옥에서의 창문은 동네 친구가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를 전했고, 사랑하는 동네 처녀를 만나고 싶어 안달하던 더벅머리 동네 총각들도 창문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 창문으로 느껴오는 그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2차원적인 그림이 아닌 3차원의 입체와 소리를 전달해 주던 그 창문이 곧 우리들의 눈이고 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간 무심히 스치고 보아왔던 한옥의 문과 창문을 통하여 다양한 표정의 한옥을 발견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