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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하면 5분만에 산만해진다?

2019-02-10

비즈니스 기획기사


알아두면 좋은 건강상식
일을하면 5분만에 산만해진다?
'성인주의결핍과잉행동장애 - 성인 ADHD에 관하여'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잘 잊는다. 매사에 싫증을 자주 느끼고 무기력하다. 식당에서 서너 명의 음식을 주문하는 일도 헷갈리고 힘들다. 과제나 일을 앉은 자리에서 끝낸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다. 수업이나 근무 시간이 되면 5분만에 마음이 멀리 우주를 유영한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도 자주 바꾼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성인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인도 어린이 ADHD의 지속부터 스트레스까지 다양하다.


성인 ADHD 증상

    성인 ADHD는 어렸을 때 ADHD를 겪은 뒤, 완치되지 않아 그 증세가 성인이 돼서도 나타나는 장애다.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행동해 계획성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주의가 부족해 일이나 공부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게 대표적인 증세다. 하지만 이렇게 말만 들어서는 감이 와 닿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일할 때 딴청을 피우거나 때로는 끝을 맺지 못한다. “그 정도를 성인 ADHD 환자라고 부르지는 않죠. 심한 경우 ‘난봉꾼’이 떠오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인데도 집에 돈 한 푼을 벌어다 준 적이 없이 밖으로만 도는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조사를 해보지 않아 모르긴 해도, 난봉꾼이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 사실은 심각한 ADHD 환자도 꽤 될 겁니다.” 김성찬 서울탑마음클리닉 원장이 실감나게 묘사했다.
김 원장은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로, 환자의 절반이 ADHD 환자다. 그 중에는 성인 환자도 있다. “순간순간을 사는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진득하게 일을 하질 못하니 돈을 벌 리가 만무하죠. 일은 미루기만 하고 마치지를 못합니다. 회의라도 했다 하면 5분이 채 안 돼 딴 짓을 하죠. 거짓말을 하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사람들과도 자주 충돌합니다. 옆에 누군가 붙어 앉아 챙겨주지 않으면 도저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요.” 이런 행동을 매일 반복한다. 원래 싫증을 자주 느끼는데다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즉흥적이기까지 하니, 진지하게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도 고치고 싶어하지만 손 못 대

    가정 생활의 문제가 직장에서라고 드러나지 않을 리 없다. 김 원장은 “직장에서 근무태만을 저지른 날의 수를 비교해 보면, 성인 ADHD 환자는 다른 사람에 비해 연간 평균 22일 더 많다고 나온다”고 말했다. 22일이면 어지간한 직장에서 한달 동안 근무하는 날 수에 해당한다. 1년 중 한 달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직장 생활이 원만할 리 없다. 학생일 경우에는 학업 성적이 떨어진다. 모두 주의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ADHD의 전형적인 증세 세 가지가 모두 나타납니다. 부주의함, 충동성, 그리고 과잉행동이지요. 하지만 성인의 경우 과잉행동은 줄어들어 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주의함이 주로 문제가 되죠.” 일에 집중하고 싶어도 5분이 채 안 돼 딴 생각이나 딴짓을 하니 능률이 생길 수 없다. 조금만 규모가 크거나 복잡한 일을 만나면 머릿속이 엉킨 것처럼 돼 제대로 마치지 못하며, 심지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고 얼마나 시간을 들여 어떻게 마쳐야 할지 감도 못 잡는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애교다. 과잉행동처럼 공격적인 증상은 아니지만, 잦은 실수와 건망증, 무능함으로 사회에서 갈등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그 결과 우울증까지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증상이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성인 ADHD 환자가 전체 인구의 약 2~4%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어린이 환자 비율인 5%(가벼운 경우는 약 8%)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어려서 ADHD를 겪은 사람의 절반이 성인 ADHD로 고통 받는다는 뜻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부주의함에 따른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고통 받는다. 인구 중 2%라면 50명 중 한 명꼴로, 학교로 치면 한두 반에 한 명이 환자가 된다. 결코 적지 않다. ADHD는 유전과 뇌 발달 결함 등의 원인으로 발생한다. 특히 대뇌 피질의 두께와 전전두엽 피질의 넓이를 정상 어린이의 성장 패턴과 비교해 보면 약 2년(전전두엽 피질 넓이)에서 3년(대뇌 피질 두께) 정도 뒤쳐져 있다. 전전두엽은 억제와 조절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ADHD 환자가 충동적이거나 과잉행동을 보이다가 성인이 되면 잦아들고, 주로 부주의함을 보이는 이유가 뇌의 발달 지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생물학적인 이상에 원인이 있다 보니, 환자 스스로가 힘들어하면서도 혼자서는 고치거나 극복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김 원장은 진단과 치료를 통해 극복할 것을 권한다. “약물 치료와 교육 등을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생활을 개선합니다. 특히 약물치료를 통해 더 나은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를 맞이하고, 이를 통해 극적으로 달라진 삶을 경험해 보면 치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성인 ADHD는 때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건망증을 비유한 말로, 불필요하게 과장한 것은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성인 ADHD의 증세는 의학적인 실체가 있으며, 그 뿌리 역시 어린 시절 겪은 ADHD에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성인 ADHD를 확진할 때 의심 환자가 12세 이전에 ADHD 증상을 보였는지를 확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이유로도 성인 ADHD의 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역설적으로, 실제로 복잡한 현대사회의 병폐가 예전에 없던 후천적인 성인 ADHD 증세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바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심해도 ADHD 증세 올 수 있다

    박혜연 임상심리전문가(서울대 심리학과 연구원)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 ADHD 환자를 수없이 봐왔다. 성인 ADHD에 대한 인식이 낮을 때였으므로 환자는 대부분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최근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성인도 ADHD에 취약하며 어릴 때 ADHD를 겪지 않고도 순전히 현재의 스트레스만으로도 증상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트레스와 뇌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오래 됐지만, 전통적으로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부위에 집중됐어요. 쥐에게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주입하면 코르티솔 수용체가 있는 해마 부위가 쪼그라들고, 이 쥐는 미로를 찾지 못하지요. 스트레스가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이후 영장류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스트레스는 해마뿐 아니라 전전두엽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DHD가 전전두엽 피질의 성장 지연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신경생물학적인 원인이 ADHD의 주요 발병 원인이라면, 스트레스 역시 유사한 증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쥐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스트레스는 지식을 활용하는 등 고차원적인 뇌기능을 떨어뜨리고 즉각적인 보상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보상에 집착하는 모습도 ADHD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ADHD 환자는 평소 일에 무기력하다가도 자신이 흥미를 보이는 분야가 있으면 열광적으로 몰입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어떤 점이 스트레스를 불러올까. “대표적인 것이 불확실성과 통제불능성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 불안을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가장 크죠.” 당장 내일, 다음 달, 이듬해, 10년 뒤 미래가 불투명한 요즘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이 뇌에 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ADHD처럼 보일 수 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스트레스에 의한 뇌의 변화는 일시적이라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쥐 실험에서는 코르티솔 주입을 중단하면 뇌가 다시 원상 복귀됩니다. 하지만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회복을 실험한 연구 결과는 없어요. 계속 주의와 연구가 필요한 이유죠.”
    아직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는 스트레스가 ADHD의 원인이라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지금도 한창 연구가 진행중인 분야이며, 의미 있는 연구 결과도 쌓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스트레스에 의한 ‘유사 ADHD’ 가능성도 추가되지 않을까. 가장 좋은 것은 스트레스도 그에 의한 ADHD도 책에서 사라지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미래는 점점 더 불안하고 복잡해져 가는 추세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