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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얻는 귀중한 자원 제염(製鹽)

2022-05-04

문화 문화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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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얻는 귀중한 자원 제염(製鹽)
'소금가마로 구웠던 전통 소금, 자염'

    흔히 우리나라의 천일염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전에는 바닷물을 가마솥아 담고 불을 지펴 생산했다. 그렇기에 '소금을 구웠다'라고 했고, 문헌에는 '자염(製鹽)'이라 표기했다. 자염에는 많은 땔감이 필요하기에 선조들은 갯벌에서 염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써레로 갯벌을 갈아엎고 나래로 개흙, 갯벌의 흙을 잘게 부순다. 그 흙에 햇볕을 쬐면 수분은 증발하고 소금기가 서린다. 이를 함토(鹹土)라 하는데, 그 위로 바닷물을 부우면 소금기가 녹아서 염도가 높아진다. 자염은 이렇게 얻은 함수(鹹水), 즉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을 가마에서 끓인 것이다.  
 

약 462만㎡에 달하는 국가등록문화재 신안 증도 태평염전 전경 (사진. 문화재청)
 
소금가마로 구웠던 전통 소금, 자염
    ‘소금가마’라 하면 으레 무쇠 가마솥을 생각하지만, 소금 가마는 열을 고르게 받도록 바닥이 평평하다. 굳이 둥근 모양도 아니었고, 무쇠로 제작하지도 않았다. 불에 태운 굴 껍데기를 빻아 만든 석회가루를 물에 갠 후에 대나무로 엮은 틀에 발라서 흙가마[土盆]를 만들었다. 다만 갯벌이 없어 바닷물을 직접 졸였던 동해안에서는 무쇠가마[鐵盆]를 썼다. 서?남해안에서 개항이 된 후에야 쇠가마를 쓰기 시작했다.
    수분을 모두 증발시켜야 소금 입자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자염이건 천일염이건 염도가 높아지면 물속에서도 결정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것을 건져내 쌓아두면 마그네슘 등 일부 무기질이 함유된 물기가 빠진다. 소금에서 빠지는 물을 ‘간수’라 하는데, 간수는 두부를 응고시키는 촉 매제로 쓴다.
    함수를 얻는 방법은 지역마다 달랐다. 갯벌의 구성 입자에 따라 함토를 쌓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태안반도 지역에서는 모래가 많이 섞인 갯벌을 파서 함수를 모으는 구덩이[갈통]를 만든다. 갯벌 위에 함토를 쌓고 바닷물을 부으면, 함토가 쉽게 무너져 내려 함수를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덩이를 판 흙으로 함토를 만들고, 말린 후에 다시 구덩이를 채운다. 그리고 사리 때가 되면 밀물 때마다 함토가 바닷물에 잠기게 되고, 바닷물이 함토층을 통과하면서 염도가 높아진 채로 구덩이에 모이는 것이다. 조선 후기 소금 수요가 증가하자, 낙동강 유역에서는 제방을 쌓아 바닷물 출입을 조절했다. 동해안에서는 육지에 염전을 만들고, 도랑을 파서 바닷물을 근처까지 끌어들여 함수를 만들었다. 
 
01. 국가무형문화재 낙화장 김영조 보유자가 그린 자염 생산 모습. 낙화는 불에 달군 인두를 나무, 종이, 비단 등에 지져서 그리는 그림이다. (사진. 문화재청)
02. 자염 과정 중 소를 이용해 개흙을 써레질하는 모습(사진.태안문화원)    03. 자염 과정 중 나뭇가지와 이엉으로 덮는 모습(사진.김준)
 
화학 원료 생산을 위한 일제의 천일염전
    개항 후 일본은 서해안에 천일염 생산기지를 건설했다. 갯벌과 봄가을의 건조한 날씨가 소금 생산에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주된 목적은 화학 원료로 사용하는 가성소다, 즉 수산화나트륨을 얻기 위함이었다. 일본은 1906년 인천 주안에 대만식 천일염 시험장을 설치했다. 바닷물을 저수지에 저장하다가 증발지로 이동시켜 햇볕에 수분을 증발시킨 후에 결정지에서 소금 결정을 얻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조선시대에도 알려져 있었다. 정조 때 성해응이 살핀 ‘쇄염법' 이 그것이다. 「연중잡록(燕中雜錄)」에 실려 있으니 중국의 사실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고, ‘쇄’라 했으니 햇볕을 쬐는 방법이다. ‘저수지 5개를 파고, 먼저 제1 저수지를 채운 후 5~6일 동안 햇볕을 쬐다가 다음 저수지로 옮기고, 마지막 저수지에 이르면 서리와 눈처럼 희게 소금이 엉긴다’라고 했다.
    조선에서 왜 쇄염법을 도입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천일염전은 해일 등의 피해를 막는 제방을 쌓아야 하고, 바닥을 평평하게 다져야 한다. 더욱이 당시에는 화학공업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소금의 용도는 식용으로 제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대한 자본투자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천일염전을 경기만 이북에 조성했다. 삼남 지방의 자염 생산과 마찰을 피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6·25전쟁으로 남북한이 분단되면서 남한에는 경기도의 천일염전만 남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소금 증산정책을 추진했다. 1957년부터 소금이 과잉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염전을 폐지하고 이를 논으로 바꾸려 했다. 그러나 섬에 조성된 염전은 농업용수 부족으로 염전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섬으로만 구성된 전라남도 신안군은 오늘날 ‘천일염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햇볕과 바람만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소금을 생산 하는 천일제염법(사진.이미지투데이)
 
쇠퇴하는 한국 제염을 되살려야 한다
    염업은 사양산업이다. 외국산 소금이 수입되면서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수입해 가공한 정제염은 수산화나트륨 성분이 대부분이며 자염 또는 천일염에 포함된 각종 미네랄 성분이 없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 등을 구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전통 자염이나 천일염과 다를 바 없는 제품을 비싼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다.
    옛 기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염은 바닷물을 개흙에 투과시키고, 열을 가열해서 만든다. 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걸러질 수도 있다. 예전 방식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그 원리는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할 듯하다. 전통 기술의 잠재력은 그런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