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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얼굴, 솔향기 계곡바람에 마음을 씻다

2019-03-26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충북 어디까지 가봤니
물에 비친 얼굴, 솔향기 계곡바람에 마음을 씻다
'충북 어디까지 가봤니'

    빙점(氷點)의 물에 세상살이에 일그러진 얼굴이 비친다. 소나무숲 향기에, 계곡을 훑고 지나는 바람에, 몸과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자연은 그렇게 또 한 번 세속의 죄를 용서한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속리산을 찾았을 때 보려했던 것도 죄 많은 자신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자연은 그를 용서하는 솔향기와 계곡의 바람을 보냈겠지만 그는 끝내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티고개 넘던 추억으로 도착한 사내리
     말티고개를 넘는 길이 정겨웠다. 가파른 산비탈에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넘는 버스는 그르렁거리는 엔진소리를 토하듯 내뱉었다. 창밖은 낭떠러지 같았다. 아찔했지만 재미있었다. 풍경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저 그 상황만 지금도 생생하다. 속리터널이 생기면서 말티고개는 추억에 남았다. 
    보은읍에서 말티고개를 넘으려면 장안면 장재리를 지나야 한다. 장재삼거리를 지나 장재저수지 쪽으로 가다보면 도로 왼쪽에 ‘대궐터’라고 적힌 작은 푯돌이 있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속리산을 찾아갈 때 머물렀던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세조의 속리산 행차, 신하들은 말티고개에 박석(얇고 넓은 돌)을 깔았다. 임금이 가는 길에 지장이나 막힘이 없어야 했다. 말티고개를 넘어 세조가 만난 건 시냇가 소나무 군락이었다. 그중 세조의 행차를 막고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길을 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의 정이품송이다. 말티고개에 처음 박석을 깐 것은 고려의 문을 연 왕건 임금 때였다. 왕건 임금도 속리산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오래 전에 사내리에 사는 할머니에게 옛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당신의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말티고개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와 같이 산에 올라 봄나물을 뜯던 기억을 더듬던 할머니는 우마차가 간신히 다니던 고갯길에 박석이 깔려있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버스를 타고 말티고개를 넘던 추억을 떠올리는 동안 차는 속리터널을 지나 사내리 상가단지에 도착하고 있었다.

 
십리의 반이라서 ‘오리숲길’ 
    사내리 상가단지에서 법주사 앞까지 이어지는 길을 ‘오리숲길’이라 한다. 10리(4㎞)의 반 정도 된다고 해서 ‘오리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법주사 앞부터 세심정까지 이어지는 길은 ‘세조길’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세조)이 믿고 따르던 신미대사를 찾아 갔던 길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오리숲길’과 ‘세조길’을 이어 걸으면 약 4.5㎞ 정도 된다. 그 길을 왕복해야 하니 9㎞ 정도 걸어야 한다. 이른 점심으로 능이버섯해장국을 먹었다. 국물이 맑은 탕이었다. 짙은 능이버섯 향을 입에 머금고 출발했다.   
차들이 오가는 큰길 뒤편 이면도로를 따라 걷는다. 구불거리며 자란 줄기 굵은 소나무가 가로수다. 포장된 도로를 걸어야 하지만 소나무 가로수의 운치에 걷는 맛이 제법 산다. 
입장료를 내는 곳이 나왔다.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법주사에 있는 보물들을 보는 것으로 위안하기로 했다.
자연관찰로로 접어들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생강나무, 참나무, 조릿대 등 여러 종류의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숲길 옆 냇물 물소리를 들으며 부드러운 흙을 밟고 걷는다.
 자연관찰로를 벗어나면 하늘을 가린 키 큰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소나무 향기가 몸을 씻어내는 느낌이다. 법주사 앞 삼거리가 분주하다. 등산객, 오리숲길과 세조길을 걷는 사람들, 법주사 구경 온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 그곳이다.



 
‘세조길’을 걷다
‘세조길’을 알리는 아치형 문으로 들어선다. 도로 바로 옆 숲길을 걷는 것이다. 화장실 벽에 ‘세조길’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도로를 건너 ‘세조길’ 아치형 문으로 들어간다. ‘세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길은 상수원지로 이어진다. 상수원지 방죽 바로 전에 눈썹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가 있다. 안내판에 적힌 이름이 없으면 그저 큰 바위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큰 바위를 살피는데 바위 아래 틈에 맺힌 고드름을 발견했다. 고드름이 생길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곳에 생긴 고드름이 바위 보다 더 마음을 끌었다.
 상수원지는 고즈넉했다. 물가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수면이 얇게 얼었고, 그 위로 어젯밤 흩날리던 눈이 성기게 남았다. 얼음이 녹은 곳은 맑고 푸른 물 아래 바닥까지 보였다. 빙점(氷點)의 수면에 세상살이에 일그러진 얼굴이 비친다.
 세조가 속리산을 찾았던 이유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조카 단종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고 죽게 하고, 단종에게 충성을 바친 신하들을 살육하고,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등 형제들마저 죽인 세조였다. 죽어도 씻을 수 없는,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세조는 아마도 끝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수원지 데크길이 끝나고 평범한 숲길을 걷다보면 ‘세심정 1.4㎞’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곳부터 세심정 아래 목욕소까지 계곡 기슭에 놓인 데크길이 이어진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계곡이 좁아진다. 목욕소라는 안내판에 세조가 목욕을 했던 곳이라고 적혔다. 목욕소 위 바위에는 말 머리의 형상이 얼핏 보이는 ‘마두암’이 있다. 마음을 닦는다는 세심정(洗心亭)은 터만 남았다. 
 세심정 옛터에서 먹을 것을 팔았다. 그냥 돌아서서 왔던 길로 돌아간다. 세상살이에 일그러진 얼굴을 들켜버린 상수원지의 맑고 푸른 물과 그 죄를 씻어줄 것 같은 솔향기를 느꼈으니, 법주사 냇물 앞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과 600여 년 동안 기품을 간직한 정이품송 정도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도 괜찮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