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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으로 빛나는 봄 물결, 초롱초롱 떠오르는 기억들

2019-04-23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충북 어디까지 가봤니
옥색으로 빛나는 봄 물결, 초롱초롱 떠오르는 기억들
'진천 초롱길'

     천년 세월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는 진천 농다리, 그 다리를 밟고 미호천 물길을 건넌다. 성황당이 있는 살고개를 넘어 초평저수지 물가 산기슭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하늘다리를 건너 매점 앞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이 길이 초롱길이다. 돌아갈 때는 산길을 선택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바람이 살갑다. 농암정 앞에 펼쳐진 풍경을 마음에 간직하고 다시 농다리로 돌아왔다.
 
농다리에 얽힌 세 가지 이야기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굴티마을) 앞 미호천의 이름은 세금천이다. 고려 초기 굴티마을에 임씨 일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인 임장군이 농다리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농다리에 얽힌 세 가지 이야기.  
    첫 번째는 임장군이 농다리를 놓게 된 사연이다. 당시 세금천을 건너려는 젊은 부인의 딱한 사정을 들은 임장군이 말을 타고 돌을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두 번째도 농다리가 생긴 유래에 대한 전설이다. 굴티마을 임씨 집안에 힘 좋은 남매가 살았는데, 힘자랑 내기를 하게 됐다. 아들이 내기에 질 것 같게 되자 엄마가 아들 편을 들어 아들이 이기게 됐다. 내기 조건 중 딸이 해야 할 일이 세금천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게 농다리였다.
     세 번째는 농다리에서 울음소리가 났다는 이야기다. 2003년에 임 모씨가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농다리 바로 옆 마을에서는 들리지 않았는데, 인근 초평과 덕산 지역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커다란 능구렁이가 소리를 내어 운다면 아마도 그것과 같았을 것이라 것, 그해 한국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초롱길의 출발지점인 농다리전시관에 들러 농다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고 출발했다.


 
농다리의 추억
    대학진학 시험이 코앞이었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공부도 시험도 다 잊은 채 친구들과 어울려 진천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 냇가에서 천렵을 하고 야영도 할 계획이었다. 필요한 물품은 각자 알아서 가져오기로 했다. 우리의 행선지는 진천 농다리였다.
그때도 농다리가 천 년 전에 놓인 다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보다 뛰어들어 놀고 싶은 개울만 보였다. 누구는 낚싯대를 가져오고 누구는 반두를 들고 왔다. 카메라를 가져온 친구도 있었다.
    반두를 들고 물로 뛰어드는 친구, 그 친구를 카메라에 담는 친구, 좀 떨어져서 낚시를 하는 친구, 라면을 끓이는 친구, 물가에 앉아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는 친구, 각자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던 친구들이 돌아왔다. 피라미와 잘잘한 물고기 몇 마리가 전부였다. 이것저것 넣어 냄비 가득 잡탕을 끓여 저녁을 먹고 모닥불을 피워 밤을 맞이했다.
    저녁 어스름 냇물은 부풀어 오른다. 어둠이 내려 냇물이 보이지 않는다. 물소리는 어둠 속에서 더 크게 들린다. 어둠이 불빛을 빨아들일 것 같았다. 누군가 가져온 텐트 하나, 그게 우리에게 있는 이슬을 피할 유일한 안식처였다. 모로 누워도 자리가 좁았다. 서로 몸을 겹치고 꺾어서 간신히 하룻밤을 보냈다. 여름이었지만 더운 줄 몰랐고, 그 냇가에 우리밖에 없었지만 무서운 줄 몰랐다.
     ‘투둑투둑’ 텐트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빗방울이었는지, 이슬방울 구르는 소리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맞이한 아침은 상쾌했다. 바람에 이는 물결마다 아침 햇살이 부서져 눈이 부셨다.


 
초롱길을 걷다
    농다리를 건너며 옛 일을 떠올렸다. 농다리를 지나 성황당이 있는 살고개를 넘는다. 임장군이 농다리를 놓을 때 타고 있던 말의 발자국이 찍힌 자리라고 전해지는 곳을 화살표가 가리킨다.
    이정표에 있는 하늘다리 방향으로 간다. 살고개 고갯마루에 돌무지가 있다. 초평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마을이 있었다. 옛날에 그 마을 주변 산세가 용의 형상을 닮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에 있는 산을 깎아 길을 낸 뒤에 마을은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에 길을 낸 그곳이 풍수지리상 용의 허리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용고개다. 용의 기운이 죽었다고 해서 살고개라고도 부른다.
    고개를 넘어 초평저수지 물가 산기슭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도착 지점이자 반환점인 하늘다리가 보인다. 봄바람이 세차게 분다. 지난 가을 낙엽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흩어진다. 저수지에 물비늘이 인다. 옥빛 물결마다 햇볕이 부서진다. 그런 풍경을 보며 흔들리는 하늘다리를 건넌다. 바람에 밀리는 몸을 애써 지탱하려하지 않았다. 멈추어 서서 바람을 품는다. 돌아보면 빛났던 청춘의 한 순간, 초롱초롱 떠오르는 그 추억을 품는 것처럼….
    하늘다리 끝 매점에서 따듯한 차 한 잔 마신다. 돌아갈 길을 생각했다. 왔던 길 보다는 산길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 건너 절벽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윤곽이 어슴푸레 보인다. 그 절벽 이름이 논선암이다. 두타산의 세 신선이 내려왔던 곳이 논선암이란다. 세 신선이 주변 지형을 보고 ‘배’와 관련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훗날 이곳에 배가 뜰 것이라는 말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곳에 초평저수지가 생긴 것이다. 
    논선암 절벽 위로 올라가는 산길이 꽤 가파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산천을 굽어본다. 능선길에 올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농암정에 도착했다. 정자가 있는 곳은 언덕 꼭대기 바람의 길이다. 배낭을 벗고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이했다. 정자 기둥과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초평저수지와 주변 산들이 어울린 풍경, 농다리가 있는 미호천 풍경,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
    농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 나뭇가지 사이로 농다리가 보인다. 오후의 햇볕이 냇물에서 반짝인다. 삼십 여 년 전 친구들과 놀던 냇가가 바로 저기다. 냇가 풍경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서 그때 그 친구에게 보냈다. 이슥한 밤 답장이 왔다.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