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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 물 아래 잠긴 마을들의 옛 이야기를 듣다
'충북레이크파크 르네상스 : 제천3'


옥순봉은 단양을 지나 제천으로 흘러드는 초입에서 남한강을 맞이한다. 그곳에는 토정비결로 유명한 조선시대 사람 토정 이지함과 그의 조카이자 천재 시인 이산하의 이야기가 전한다. 옥순봉을 지난 남한강은 북서쪽으로 흐르다 청풍문화재단지와 비봉산을 지나 남서쪽으로 물길을 튼다. 청풍호 물 아래 잠긴 마을들의 옛 이야기가 청풍문화재단지에 가을처럼 남아있다. 월악산에서 흘러내린 성천, 광천, 동달천 물줄기를 따라 흐르다 어느 날 저녁 저무는 냇가에 앉아 월악산 위로 떠오르는 초승달을 보았다. 신라의 마지막 왕가 오누이의 아득한 전설은 이름 없는 계곡이 시작되는 월악산 덕주사 어떤 스님이 들려주었다.

청풍문화재단지. 망월산성으로 가는 길에 본 풍경. 청풍대교 청풍문화재단지 망월산이 보인다.



청풍호, 물 아래 마을 이야기
대대로 살아왔던 남한강 가에서 마을 사람들은 이번 봄에도 봄놀이를 즐긴다. 치마저고리 곱게 입은 아낙들의 어깨춤이 겉시늉이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도, 강가를 어슬렁거리는 사내들도 느끄름하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봄놀이다. 다시는 못 볼 고향 냇가 풍경이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물에 잠길 대물림 터전의 마지막 풍경, 그날 봄놀이에 흥이 실릴 리 만무했을 것이다.
아픈 동네 사람들을 보살펴주던 근춘약방도, 겨울 채비로 한 짐씩 나무를 지고 걷던 나무꾼들의 강변길도, 참외밭을 지키던 월굴리 원두막도, 소달구지에 두엄을 나르며 농사준비 바빴던 북노리 논밭의 봄도, 뱃사공과 뗏목꾼들이 쉬어가던 대폿집 청풍관도, 한때는 120 가구가 살며 북적댔던 상서창 마을 방앗간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던 날들의 이야기를 품은 채 청풍호 물 아래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탄지리 냇물에서 올갱이를 줍던 아주머니들은 식구들이 둘러앉은 푸짐한 저녁 밥상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여름 땡볕도 아랑곳 않고 물장구치며 놀던 시냇물도 아이들의 시간도 사라지고, 등하교길 학생들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태우고 강을 건너는 황석 나룻배는 버스를 싣고 강을 건너기도 했다. 황강의 나룻배는 생활의 편린 속에서도 커가는 소년의 꿈을 싣고 물길을 건넜다. 북진나루에서 나룻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는 옛 사진 속에서만 생생하다. 청풍명월의 뿌리, 청풍강은 물장구치던 아이들, 천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여름, 겨울이면 걸어서 언 강을 건너던 사람들, 썰매를 지치고 겨울 고기잡이하던 추억을 싣고 지금도 청풍호 물 아래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몇몇 건물과 유물들은 물 위로 옮겼다. 청풍문화재단지가 그곳이다. 제천과 충주를 오가던 완행버스는 황석나루 찻배로 물길을 건넜다. 읍리 정류소를 경유한 충주행 완행버스는 한수와 덕산을 지나기도 했다. 완행버스 정류장이었던 금남루는 지금은 청풍문화재단지에서 여행자들을 맞이하며 사람들을 태워주고 내려주던 옛 완행버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左)청풍문화재단지. 금남루 右)청풍문화재단지. 망월산성으로 가는 길에 본 연리지



금남루는 1825년에 만들고 1870년에 고쳐 지은 유물이다. 198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청풍부를 드나들었던 관문, 팔영루는 청풍면 광의리에서 신작로를 따라 읍내로 들어오는 길이었으며, 북진나루에서 읍내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했다. 한벽루는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 속 수몰 전 한벽루는 청풍강을 굽어보며 그 자체도 풍경이 됐다. 사진이 실제를 다 담지 못했을지라도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은 한벽루와 주변 풍경은 사진 속 그 모습 보다 풍류가 덜하다. 응청각, 금병헌, 옛 민가들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망월산성과 망월루에 도착했다. 그날 밤 초승달이 떴다. 청풍문화재단지와 달 뜬 풍경을 한 눈에 보았다. 옛 사람들은 청풍문화재단지가 있는 망월산에 올라 달구경을 했을 것이다.
송계계곡으로 알려진 동달천과 그 지류들
제천 지역 동달천 상류는 만수계곡 부근이다. 동달천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옆에서 시작된다. 충주시 미륵리 만수골에서 흘러온 물길이 석조여래입상에서 시작된 동달천과 만나는 곳 부근에서 동달천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닷돈재 야영장을 지난 물길은 충주와 제천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 팔랑소를 빚어냈다. 냇물을 그 너른 품에 안고 흐르게 하는 안반바위에는 곳곳에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물의 결대로 파이고 깎인 안반바위의 곡선은 물이 흐르는 세월의 나이테다. 그 세월이라면 주변의 노송과 어우러진 웅덩이와 작은 폭포에 이곳에 내려와 머물렀던 하늘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쯤은 있어야 제멋이겠다 싶었다.
와룡대도 마찬가지다. 나무 그늘 아래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작은 폭포 여럿 만들고 흐르는 계곡 풍경도 그렇지만, 와룡대 물길과 우뚝 솟은 말마산(용마산)을 한 틀에 넣고 바라보는 풍경은 앞으로 이 물길에 펼쳐진 또 다른 풍경의 예고편이다.

左)동달천 지류의 하류에 있는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 석탑’ 右)덕주산성 월악루와 망폭대



동달천으로 흘러드는 이름 없는 물줄기가 있어 그 처음을 찾아갔다. ‘골뫼골명품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반긴다. 골뫼골에서 60년 넘게 살았다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 물길 옆에서 보았다. 수안보에서 꼬부랑재를 넘어오는 내내 색시 손도 한번 못 잡아 봤다는 아저씨는 처갓집이었던 물레방앗간에서 사모관대를 쓰고 혼인하여 이 골짜기에 가마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냇물 옆에서 광주리에 담긴 붉은 고추가 햇볕에 잘 마르고 있었다. 가뭄에 마르지 않고 겨울에 얼지 않는 따듯한 물이 난다는 골뫼골 옹달샘은 정월 대보름 전날 새벽에 첫 닭이 울면 동네 아낙들이 아침밥을 짓기 위해 물을 떠가던 샘이기도 했단다. 9대째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말을 적어 놓은 안내판에는 300년 넘게 사람들이 길어 먹던 옹달샘이라고 한다.
골뫼대장군과 골뫼여장군 장승 부근 계곡을 지난 물길은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 석탑’ 앞에서 층계처럼 쌓인 너럭바위를 만들었다. 계곡의 바위도 볼만하지만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 석탑’은 골뫼골을 지키는 보물이다. 빈신사 터에 세워진 고려시대 탑이다. 사자 네 마리가 탑신을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 가운데 비로자나불상이 있다. 탑에 새겨진 명문은 ‘몹쓸 적들이 물러갈 것을 기원하며 월악산 사자빈신사에 구층 석탑을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몹쓸 적’을 고려를 침입한 거란족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탑을 지난 물길은 동달천과 만나 흐르다 덕주산성과 망폭대를 만난다. 덕주산성 월악루와 동달천에서 우뚝 솟은 망폭대를 한눈에 넣은 풍경이 그럴싸하다. 동달천은 덕주교 부근에서 덕주사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신라 마지막 왕가의 오누이,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이야기가 덕주사에 전한다. 덕주공주는 덕주사에서 마의태자는 동달천이 시작되는 지금의 충주 미륵리 미륵사지에서 은거했다. 덕주사에서 월악산으로 올라가면 덕주사 마애불이 있고, 충주 미륵사지에는 석조여래입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미륵불이 있다. 덕주사 마애불과 미륵사지 미륵불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옥순봉을 보고 성천과 광천 합수지점
옥순대교, 옥순봉 전망대, 자리를 바꿔가며 옥순봉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전에 유람선을 타고 보았던 옥순봉 풍경도 생각났다. 옥순봉은 수산천이 청풍호로 유입되는 곳에 있다.
옥순봉에서 수산천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옥순봉생태공원이 나온다. 그곳에서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 선생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옥순봉 전망대에서 본 옥순봉. 사진 오른쪽에 옥순봉 출렁다리가 보인다



조선시대 중종 임금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명종의 삼촌인 윤원형은 권력의 전횡을 일삼았다. 그가 이지번의 아들 이산해를 사위 삼으려고 하자 이지번은 가족과 함께 단양 구담봉 근처에 숨어 살았다. 이산해는 어려서부터 신동이었다. 5살에 ‘가난해서 아픈 마음을 달을 보며 위로 한다’는 내용의 시를 짓기도 했다. 이산해는 커서 북인의 영수가 되고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이지번의 동생이자 이산해의 삼촌이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이다. 선조가 즉위하고 이지번이 청풍군수로 있을 때 이지함은 제천 수산에 살며 학문을 갈고닦았다고 한다. 이지함의 ‘걸인청’ 이야기는 잘 알려졌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라는 말을 남긴 이지함은 아산 현감 때 ‘걸인청’을 만들어 빈민을 구휼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기도 하고, 짚신 삼는 법이나 고기 잡는 법, 수공업 등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옥순봉을 보고 발길이 향한 곳은 용하계곡이다. 용하계곡은 광천의 상류다. 월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너럭바위, 기암괴석과 어울렸다. 1898년 박세화 선생이 이 계곡의 아홉 가지 풍경을 골라 구곡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진 비석이 계곡 한쪽에 있다. 지금 봐도 그럴만한 계곡 풍경이다. 송계계곡(동달천)과 함께 제천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월악산에서 시작된 또 다른 물줄기인 성천도 있다. 성천과 광천이 만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수산리교는 두 물줄기를 따라 돌아다닌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그만이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서 월악산 위로 떠오르는 초생달을 한참동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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