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청주를 수호해 온 우암산의 문화유산 4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문화유산'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4-4. 청주를 수호해 온 우암산의 문화유산
관음사 남쪽 삼일공원 아래에 있는 대한불교수도원은 1952년에 용화사(龍華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사직동 무심천변에 있는 용화사와 절 이름이 같기 때문에 신용화사(新龍華寺)라 불렸으나 1976년에 윤벽산(尹碧山) 주지가 대한불교수도원이라는 새 종파를 등록함에 따라 동시에 사찰의 이름이 되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신사가 있었던 곳이며 고려시대에는 비교적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도 수도원 주변에는 많은 기와 조각과 석조물이 발견된다. 사찰의 남동쪽 계곡에서 발견된 초석과 불상대좌를 대웅전 앞으로 옮겨 놓았는데 아직 지대석 등이 결실되어 완전하게 복원된 것은 아니다. 상·중·하대석으로 이루어진 일반형이다. 하대석은 8잎의 연꽃무늬가 돌려져 있는 원형 대석이고, 중대석은 평면 8각으로 아래와 위에 촉이 있어 하대석과 상대석의 구멍에 끼워 세우도록 하였다. 상대석은 두 겹으로 된 16잎의 연꽃무늬가 위를 향해 돌려졌으며 각 연꽃잎 안에 다시 연꽃 봉우리를 새겨 매우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한불교수도원 전경



경내 주변에서 많은 기와편이 발견되고 있는데 보상화문의 중심장식이 있는 당초문 암막새가 출토된 바 있고, 원형 기둥받침이 새겨진 초석은 불상을 봉안했던 건물과 관계되는 것 같다. 이들 불상 대석과 초석의 조성수법은 대체로 고려 초기로 볼 수 있으나 이곳 일대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종합해 보면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터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절터는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세워질 만큼 시내에서 가깝고 주변 환경이 좋은 곳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1979년 여름에 수도원의 남쪽 계곡에서 폭우로 노출된 6구의 파괴된 석불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석불들은 모두 높이가 40cm 미만인 작은 불상들로 머리가 없는 좌상 4구와 불두 2구가 있다. 머리와 불상이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 6구의 불상이 각기 다른 불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불두 1구는 높이 26cm로서 미소를 머금은 얼굴 표정이 특히 아름다운 고려의 작품으로 비록 불두만 남아 있지만, 청주에서 가장 예쁜 불상이다.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미소를 머금은 입술과 눈길이 신비롭다. 좌상 4구는 선정인, 항마촉지인, 여원시무외인 등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상으로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조각 수법이 소략한 것으로 보아 모두 같은 불당에 모셔졌던 나한상들로 추정된다.

대한불교수도원 출토 석불두



우암산 정상의 남쪽 계곡 CJB 송신소로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약 1천 평의 대지가 있는데 이곳 역시 절터이다. ‘흥천(興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고려시대에 있었던 ‘흥천사(興泉寺)’의 터였음이 밝혀졌다. 이곳에 1970년부터 1978년까지 은덕사라는 절이 있었다가 사찰정리 정책에 따라 철거되었다. 1970년 6월 은덕사 살림집을 신축할 때 청자 대접과 동종, 철확 등이 출토된 바 있어서 유서가 깊은 절터임을 말해준다.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이 동종은 아담한 소종으로서 각부가 완전하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조각이 우수하고 형태가 아름다워서 이미 학계에 수차 소개된 바 있다. 종의 정상부에 마련된 용뉴(龍?)와 음통(音筒)이 종의 몸체에 비하여 큰 느낌이다. 음통을 감싼 용은 갈기와 비늘이 선명하며 들어 올린 발에 여의주가 있어 세련미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음통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원통형으로 다른 종과는 달리 마디가 없이 주름장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음통의 상단부에는 8엽의 꽃잎 위에 구슬장식이 달려 있다. 상대와 하대에는 당초문의 띠를 돌렸으며, 상대 위에는 삼각형의 꽃잎이 표현되어 있다. 유곽(乳廓) 역시 당초문의 띠를 돌려 마련하고, 그 안에는 연꽃 받침 위에 돌기된 젖꼭지 모양의 종유(鐘乳)를 배치하였다. 유곽 아래에는 연주문 안에 16엽의 연꽃무늬가 있는 당좌와 두광을 갖추고 구름 위에 서서 합장하는 보살상이 각각 2구씩 있다. 입상화문과 도식화된 음통, 보살상 등으로 보아 대략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동종은 청주의 불교문화연구는 물론 우리나라 범종양식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운천동 구양사지에서 출토된 신라종과 함께 청주의 자랑거리이다.
청주의 진산 또는 주산으로 일컬어지는 우암산은 풍수지리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청주시민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언덕이었으며 생활의 근거지였다. 이는 선사에서 근세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유적 분포상황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선사유적은 비록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우암산 일대에 일찍부터 인류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음을 암시하며, 이들에 의하여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당산토성은 청주 역사의 출발지였다. 이밖에 우암산성이나 곳곳에 산재한 불교유적을 통하여 우암산의 옛 모습과 의미를 살펴 볼 수 있다. 흥성하였던 지역문화의 발자취 속에 때로는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각종 종교시설을 비롯하여 통신시설이 들어서고 있으며, 매년 새해 첫날 새벽이면 해돋이 축제가 벌어지고 아침마다 주말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건강과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고 소원 성취를 위해 곳곳에 돌을 모아 탑을 세우는 정성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세월의 변화 속에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우암산은 청주지역의 역사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앞으로도 영원히 청주를 지켜줄 진산이며, 소중한 자연유산이 아닐 수 없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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