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2권: 역사인물’을 게재합니다.
Cheapter1-1.궁예_청주인戶 1천을 철원으로 이주시키다 1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2세기가 흐르면서 곳곳에서 ‘공민公民*’의 초적草賊**화 현상이 나타났다. 그 영향으로 미륵불의 강림을 자처하는 인물도 나타났다.
기독교로 치면 메시아(Messiah)다. 후삼국 시대 군주인 궁예弓裔(857~918)도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구하고자 등장한 자칭 메시아의 한 명이었다.
“선종善宗이 미륵불을 자칭하였다. 머리에는 금색 두건을 쓰고 몸에는 가사를 걸쳤다. (중략) 외출하면 항상 흰 말을 탔는데 비단으로 말갈기와 꼬리를 장식하였다.”
-<『삼국사기』 권50 열전 궁예>
‘선종’은 궁예의 승려시절 이름이다. 궁예는 896년(진성여왕 10)에 처음으로 철원을 도읍지로 삼았고, 2년 뒤인 898년에는 송악(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로부터 7년 후인 905년(효공왕 9)에 다시 철원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궁예는 그 과정에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901)-마진(摩震, 904)-태봉(泰封, 911)으로 바꿨다.
*공민: 부역과 납세의 의무를 지닌 양민을 말한다.
**초적: 달리 유랑민이라고 한다.
궁예는 처음에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구려(편의상 후고구려)로 정했으나, 한반도 전역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의미에서 마진으로 개명했다. 마진은 ‘마하진단’의 줄임말이다. ‘마하’는 범어로 ‘크다’는 뜻이고, ‘진단’은 동방을 말한다. 태봉은 주역周易의 태괘泰卦에서 천하 만물이 조화를 이룬다는 뜻의 ‘태’泰와 봉토를 뜻하는 ‘봉封’의 합성어다.
왜 천도를 자주했을까 그가 천도를 자주 한 것에 대해 역사학계에는 미륵신앙 관련설, 왕건의 패서浿西* 지역 결별설, 신라를 효과적으로 공격하려 했다는 설, 철원 평야에 대한 기대설 등이 존재한다.
*패서: 지금의 예성강 서쪽의 황해도를 일컫는다.
궁예의 태봉국 철원도성 모형도 (출처: 철원군청)
905년 궁예가 다시 철원으로 돌아와 새로운 도읍지를 정한 곳은 처음 지역이 아니었다. 그는 사전에 도읍 후보지를 답사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한 끝에 지금의 철원 풍천원(비무장지대 안) 언덕에 태봉국 ‘철원도성’을 축조하였다.
궁예의 태봉국 철원도성 위치도 (출처: 국방부)
‘淸州人戶1천’에 대한 해석의 문제 904년 궁예의 행적과 관련해 아직도 학자들 간에 논쟁을 낳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궁예는 철원도성을 완공하기 1년전 ‘청주인호 1천’을 철원으로 이주시켰다. 『삼국사기』열전 궁예는 이 부분을 “청주인호人戶1천을 철원성으로 옮겨 서울을 삼고, 상주 등 30여 주현을 공취하니, 공주장군 홍기가 와서 항복하였다靑州人戶一千入鐵圓城爲京伐取尙州等三十餘州縣公州將軍弘奇來降”라고 기술했다.
역사학자들은 ‘청주인호 1천’이 철원도성을 축조하는데 중심적인 인력이 됐을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사역이 급히 필요할 때 후방의 인력을 차출하는 사례는 우리 역사에 간혹 등장한다. 신라는 486년(소지마립간 8) 충북 보은 삼년산성을 개축할 때 일선一善* 지방의 장정 3천 명을 동원한 바 있다.
‘청주인호 1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1천 가구로 보는 견해, 1호당 10명으로 평균한 1만명으로 보는 시각, 단순히 1천명으로 파악하는 견해 등 여러이론이 존재한다. 전국 여러 지역 중에서 왜 하필 ‘청주인호 1천’을 징발, 사역 시켰을까? <2부에서 계속됩니다>
*일선: 경북 구미 지역의 옛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