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특별하게 - 나의 나라
빛으로 깨어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유산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하다 '

밤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낮과 다른 어둠 때문이다. 더불어 실낱같은 빛이 비치는 순간 밤은 완성된다. 유산에 빛이 임하면 고요 속에서 역사의 숨결과 전통문화의 깊이가 되살아난다. 그래서 밤은 낮보다 더 신비롭고 더 경이로우며, 더 아름답다. 어두울 때도 빛나는 우리 유산을 찾아 떠난다.

겨울동화 속 풍경 같은 경주 동궁과 월지 ©한국광광공사 포토코리아 전우석



화려한 신라의 궁궐,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의 야경이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경주는 우리가 기다릴 때 과거에 묻혀 있던 천년의 역사를 한순간에 빛과 함께 선물한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동궁과 월지’의 전각과 석축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저마다 색을 잃을 때쯤 조명이 하나둘 빛을 밝힌다. 사적 경주 동궁과 월지는 노을과 야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유산이다.

左)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右) 5호, 3호 복원 건물 사이로 바라보는 월지 전경



‘동궁’은 경주 월성의 동쪽에 있는 궁으로 태자가 거처하던 별궁이다. 동궁에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못이 있는데 바로 ‘월지’이다.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든다’는 뜻에서 ‘안압지’라 불렀다. 이후 2011년에 ‘월지궁’, ‘월지악전’ 등의 기록을 참고하여 현재의 사적 명칭인 동궁과 월지로 바뀌었다.
경주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연못 주변에 복원된 건물에 올라 월지를 내려다본 뒤, 수변을 따라 이어진 조붓한 오솔길을 한 바퀴 걸어보는 것이 필수다.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동궁과 월지는 조명빛과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놀라운 점은 월지를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그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못의 굴곡과 지형을 활용해 ‘드러냄’과 ‘숨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세심하게 계획된 공간 디자인의 산물로, 과거 선조들의 미적 감각과 자연을 이해하는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야경을 감상하는 동안 월지의 반영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은 한 장의 그림처럼 완벽하다.

경주 계림에는 조선 순조 3년에 세운 김알지 탄생의 비가 남아 있다



우주를 향한 신라인의 창에 비친 경주
사적 경주 월성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800년 이상 신라 왕궁으로 사용된 이곳은 신라의 흥망성쇠를 품고 있다. 월성 아래에 성을 둘러싼 해자가 최근에 복원됐다. 하늘빛을 고스란히 담아낸 해자에서 천년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해자 끝자락에 사적 경주 계림이 있다. 원래 ‘시림’ 또는 ‘구림’으로 불렸는데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에 닭이 연관되어 있어 계림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울긋불긋한 조명이 수백 년된 고목에 빛을 비추면 잠들었던 나무가 부활한 듯하다. 그래서 빛으로 환해진 숲을 숨죽여 걷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다.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 계림 그곳에서 천년의 하늘을 보는 듯하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은 경주 첨성대



그리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첨성대’ 앞에 닿는다. 동궁과 월지가 화려한 신라 왕궁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국보 경주 첨성대는 신비로움의 극치이다. 한때 우리나라 지폐(1962년 십원권)에도 등장했던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로 알려져 있다. 고대인에게 별의 운행을 관찰하는 것은 국가의 흥망을 점치는 최상의 정치적 수단이었을 것이다. 또 별자리는 농사에 중요한 지침이었다. 별의 위치에 따라 파종과 수확 시기가 정해졌으니 말이다.
첨성대는 높이 약 9.5m 규모로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632~647년)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화강암 362개①를 일정한 간격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는데 돌의 개수가 1년의 날수와 유사하다. 아랫부분의 기단부, 중간부분의 원통부, 윗부분의 정자석에 각각 12달과 24절기, 별자리 28수 등 수준 높은 천문학적 의미를 담았다. 첨성대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부분은 ‘우물 정(井)’ 자를 닮은 사각형의 정상부와 정면에 나 있는 ‘창(窓)’이다. 저 창에서 바라본 하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보지만 여의찮다.
(① 전체 돌의 수는 세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며, 362라는 수가 1년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음력 1년은 354.37일이며, 당시 신라에서는 음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첨성대의 야경은 낮의 풍경과는 엄연히 다르다. 수시로 변하는 조명 덕분에 팔색조의 매력이 가득하다.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또 노란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데,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 덕택에 첨성대 주변은 포토존으로 늦은 밤까지 붐빈다.

대릉원 공식 포토존, 주변과 달리 잔디 없는 흙길이 조성되어 있다



어둠이 깃들면 잠에서 깨어나는 신라의 고분
경주를 고도답게 하는 것, 바로 수많은 고분이다. 그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사적 경주 대릉원 일원은 밤 10시까지 개방해 늦은 시각에도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동궁과 월지, 첨성대에 비하면 찾는 이가 상대적으로 적어 호젓한 편이다. 조금 어둑하지만, 산책로와 고분에 조명을 밝혀 관람에 문제가 없다.
대릉원에 발을 들이면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이내 대릉원의 유래가 된 사적 경주 미추왕릉에 닿는다.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서 장사 지냈다’는 기록에 따라 이곳을 대릉원이라 했다. 크고 작은 고분 틈에선 황남대총의 위엄이 대단하다. 두 개의 봉분이 쌍봉낙타의 등처럼 남북으로 이어져 대릉원 내 고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발굴 당시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장신구와 무기류가 출토됐다. 개중에는 서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유리공예품도 있다. 그 왼편에는 대릉원의 고분 중 유일하게 고분 내부를 볼 수 있는 천마총이 있다. 옥황상제가 타고 다닌다는 천마의 그림, 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가 여기서 나왔다.
대릉원 야경 가운데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있다. 안내 표지판에 ‘포토존’으로 표시된 이곳은 고분과 고분 사이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봄에 목련꽃이 만개하면 그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고 수십 명이 줄을 설 정도지만 겨울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左) 고대 신라인의 뛰어난 교량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월정교 右) 대릉원 솔숲. 경주의 밤이 들려주는 천년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대릉원 감상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발걸음은 ‘월정교’에 이른다. 월성과 남산을 구분 짓는 남천을 잇는 다리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발굴조사와 철저하고 오랜 고증을 거쳐 2018년 4월에 복원했다. 오색단청으로 한껏 멋을 부린 교각과 화려한 문루는 웅장하면서도 단아하다. 특히 조명을 받으면 그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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