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8-2. 육백 년의 향기로 살아난 연제리 모과나무 오송읍 연제리는 밀양박씨의 세거지로 입향조는 기묘명현인 강수(江?) 박훈(朴薰) 선생이다. 그리고 모과나무는 연제리에 세거하는 밀양박씨의 상징적인 나무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오랜 옛날부터 연제리는 모과나무가 있으므로 ‘모과울’ 또는 ‘모가울’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마을의 밀양박씨는 세상에서 ‘모가울박씨’로 불렸다. 모가울박씨는 줄여서 ‘목박(木朴)’으로도 불리는데 청주 8대성(八大姓) 중의 하나이다. 모과나무는 6백년 묵은 노거수여서 연제에서는 물론 인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1990년대까지도 주변에 잡목이 우거지고 인가에 가려져 있어 명성에 비해서는 주변 경관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하였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오래된 나무로 여길 뿐 크게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 마을은 생명과학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라는 정부 발표로 분위기가 뒤숭숭하였다. 개발을 결사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고즈넉하던 시골 마을을 뒤덮었고, 사람들은 농사일보다는 삼삼오오 모여 근심과 탄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나는 직장이 있는 청주시내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연제리에 잠시 다녀오곤 하였다. 나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연제리 모과나무의 겨울 모습
그러던 1999년 가을 어느 날 세상일에 밝고 학식도 꽤 높으신 집안 어른이 나를 부르시어 마을에 있는 모과나무를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충청북도 문화재 전문위원이었으므로 즉시 도청에 문의해본 결과 충북대학교 김홍은 교수가 이 분야의 문화재위원이니 상의해 보라고 하였다. 며칠 후 모과나무를 직접 보러 온 김 교수는 이렇게 오래된 모과나무는 처음 본다면서 문화재 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고, 이후 문화재 지정 신청과 위원회 심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2000년 6월 16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후에 오송생명과학단지 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마을이 모두 수용되면서 5백여 년이나 세거해온 박씨 후손들은 모두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지만, 모과나무는 원위치에 보존될 수 있었다. 모과나무마저 제거되거나 다른 데로 옮겨졌다면 박씨 세거촌의 흔적도 영원히 사라졌을 것인데, 개발 직전에 천만다행으로 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보존될 수 있었고 주위를 모과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청에서는 2010년에 전국의 노거수를 일제히 조사하여 모과나무를 2011년 1월 13일에 천연기념물 제522호로 승격하였다. 이미 마을은 상전벽해를 이루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상황이지만, 모과나무가 유일하게 마을을 지키면서 옛 마을의 기준점이 되었다. 실향민의 마음속에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구심점이 맞을 듯하다.
모과공원 조성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 과학단지 조성계획은 모과나무의 문화재 보존지역인 1백 평 정도만 남기고 주변은 모두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즉시 한국토지개발공사 충북지사(지금의 LH)에서 개발을 담당하는 신모 과장에게 전화하여 모과나무를 제대로 살게 하려면 1백 평만으로는 어림없으니 공원으로 계획된 다른 부지와 맞바꾸어 이곳을 공원으로 변경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였다. 택지 개발공사에 따른 문화재 발굴로 인연이 있었던 신 과장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묻기에 나의 고향이고 모과나무는 밀양박씨의 상징적인 존재라 하였더니 알았다고 하였다. 문제는 금방 해결되었다. 다음 날 나에게 전화하여 다른 공원 예정지역을 개발하고 모과나무가 있는 블록 전체를 공원으로 보존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차 한 잔을 대접하지도 않고 전화 한 통화로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었다. 참으로 사람 사이의 인연과 신뢰의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절대로 청탁이 아닌 나의 진심어린 당부였고 지역을 위한 아이디어 제시였음을 밝혀둔다.
생명과학단지가 조성된 후 박씨 문중에서는 2007년 10월에 모과공원 유래비를 세워 연제리의 역사와 모가울박씨의 유래를 담아 망향의 한을 달래었다. 유래비의 비문은 나의 졸문으로 새겨졌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연제리 실향민들과 박씨 후손들이 모여 화합 한마당 축제를 연다. 2023년에도 10월 7일에 3백여 명의 주민이 모여 망향의 한을 달래고 공연과 행운권 추첨으로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모과나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