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시 찾은 보물]
육백 년의 향기로 살아난 연제리 모과나무 3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문화유산'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8-3. 육백 년의 향기로 살아난 연제리 모과나무
연제리 모과나무 서편에는 약정지 소나무라 표석이 세워진 또 하나의 노거수가 있다. 이 소나무는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야기는 호수공원 남쪽 돌다리 마을에 있는 낙건정(樂健亭)에서 시작된다. 낙건정은 연제리 돌다리 마을 초입의 쇳대배기 동산에 있는 정자이다. 1926년에 박준학(朴準學) 등 연제리 주변 45인의 선비들이 지금은 오송호수공원이라 불리는 연제저수지(돌다리방죽)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에 정면 2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구조로 세운 목조기와의 전통식 누정이다. 낙건정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약정(約亭)을 계승한 것이다. 기묘사화로 15년의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연제리에 낙향한 강수 박훈 선생은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함께 도학(道學)에 의한 왕도정치와 향약을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셨으므로 그의 현손인 박정해(朴廷?)와 박정용(朴廷龍) 등이 고조부의 대의를 받들어 인근의 선비들과 뜻을 모아 시사(詩社)를 조직하여 백련사(白蓮社)라 하고 그 모임 장소로 연제리 마을 앞 구릉지에 정자를 세우니 이것이 곧 약정이다.
박정해는 호가 수와(睡窩)로 평생 고향에서 은둔하셨으나 학문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우암 송시열 선생과도 교유가 깊어 『송자대전(宋子大全)』에 「수와기(睡窩記)」가 수록되어 있다. 박정용은 호가 덕곡(德谷)으로 감찰과 판관을 역임하고 산음(山陰)과 안음(安陰) 현감으로 많은 치적을 쌓았으며 사촌지간인 박정해와 함께 『눌재강수유고(訥齋江?遺稿)』 간행을 주도하였다. 이 책을 인쇄하기 위해 새긴 눌재강수유고목판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7호로 지정되어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이 예속상교(禮俗相交)를 기본으로 한 향약의 정신을 계승하고 향촌 자치를 실현하고자 약정을 세운 뜻은 고조부 강수 선생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 지역에서나마 이룬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무상하여 조선 말기의 사회 혼란과 일제의 억압으로 약정은 보전되지 못하고 터만 남았는데 그곳에 노송 한 그루가 의연히 남아 마을에서는 ‘약정지 소나무’라 불렀다.

모과나무와 함께 연제리의 상징인 약정지 소나무



그 후 난국계(蘭菊?)로 변경하고 약정지에 초가지붕의 난국정(蘭菊亭)을 세워 유지되다가 1919년에 흥덕제(興德堤)를 확장한 연제저수지가 준공된 후 1926년 오송역과 면 소재지에서 왕래하기 좋은 돌다리 쇳대배기 동산에 정자를 신축하고 건강하게 자연을 즐기며 살자는 의미로 낙건정이라 하였다. 비록 약정과 난국정은 없어지고 저수지 건너편에 낙건정으로 계승되었지만, 약정지에 남아 있는 노송은 자태가 아름답고 신령스러워서 연제리 사람들에게는 변함없는 자랑이며 절경이었다. 그러나 생명과학단지 조성은 연제리의 모든 것을 잃게 하였듯이 약정지 소나무도 위기를 만났다.
오송(五松)을 상징하기 위한 소나무 다섯 그루를 옮겨 심어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에 약정지 소나무가 이식 대상에 포함되었다. 당시 청원군청 담당 공무원이 의견서 용지를 들고 학교로 나를 찾아와서는 간단히 의견을 적고 서명해 주길 부탁하였다. 나는 오히려 연제리의 상징이고 이식하였다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원위치에서 잘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마침내 약정지 소나무는 LG화학 오송공장 내에 보존되었는데 환경의 변화로 날로 쇠약하여 언젠가 고사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LG화학은 모든 경비를 부담하여 소나무를 모과공원으로 옮겨 보존하는 방안을 전문가와 상의하였는데, 이식은 곧 고사를 불러온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차선책으로 수형이 유사한 노송으로 대체하여 대를 잇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2022년 5월 13일에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이는 좀 젊은 소나무를 골라 이식을 완료하고 그 앞에 유래비를 세웠다. 본래의 약정지 소나무는 아직 LG화학 오송공장 내에 군자다운 자태로 잘 있다. 나는 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담장 밖에서 소나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곤 한다. 앞으로도 잘 버티어 살아있길 빌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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