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는 단순한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다. 사회경제 구조의 붕괴, 생활 인프라의 악화, 지역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지는 복합적 위기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지역의 자연유산 속에는 새로운 해법이 숨어 있다. 자연유산은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명승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정상호
전 인류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인 기후위기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지방 소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지정, 지방 소멸대응기금 운영,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고, 2023년에는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했다. 그러나 지방 소멸은 오랜 시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이며, 단기간에 한 지역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장기적 계획과 분야별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 소멸을 평가하는 지표로는 고령화지수, 합계출산율, 소멸위험지수 등이 있다. 그중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값이 낮을수록 소멸 위험이 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소멸위험지수는 1960년 5.0, 1970년 4.5, 1980년 4.0, 1990년 3.5로 꾸준히 낮아졌고, 2018년에는 0.9로 급락했다. 이런 추이가 지속된다면 2040년대에는 0.3이 될 것으로 예측될 만큼 지방 소멸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방 소멸이 진행되면서 지방 도시 곳곳에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도시의 사회적·경제적 네트워크가 단절되는 구조적 붕괴 현상을 보이게 된다. 생활 인프라가 악화되면서 지역민의 삶의 질이 낮아지고 인구감소지역에 빈곤층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집중되어 슬럼화에 이른다. 또한 소멸위험지역의 방치된 자연자원과 인프라는 지역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보호지역의 유지관리비용은 증가하지만 지방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면서 공공인프라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소멸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안동 하회마을 만손정 숲ⓒ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이범수
지역의 자연자원을 활용한 지방 소멸 극복 방안 최근 국제적으로는 개발이 낙후된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탄소중립 실현과 기후위기 대응이 주요 정책 목표로 떠오르면서 지역의 자연자원을 활용하는 전략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자연자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 재생은 기후위기 대응과 지방 소멸 문제 해결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하여 보호지역의 적극적인 활용이 중요한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호지역은 탄소 저장 과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기여하며, 세계 보호지역 네트워크는 전 세계 육지 탄소 저장량의 15%를 차지하고 있다(한국보호지역포럼, 2012). 보호지역은 생태계 회복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며, 홍수나 산사태를 완화하고 폭염과 가뭄 피해를 줄이는 등 자연적 완충 기능을 수행하고, 수자원 확보, 식량 안보 강화 등 필수적인 생태계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호지역의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보호지역은 여러 부처에서 각기 다른 법률에 따라 지정·관리되고 있어 통합적 관리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가유산청을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산림청, 제주세계유산본부가 협의체를 구성하여 보호지역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고령인구가 이끄는 자연유산 지역공동체 활성화 기존의 지방 소멸 대응 전략은 사회경제 구조에 초점을 맞춰왔으나, 이제는 지역공동체 중심의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지역 활성화의 성패는 공간적 특성과 지역의 차별성에 따라 달라지므로, 차별화된 요소와 전략이 필수적이다. 특히 고령화를 부정적 요소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령층은 생물다양성과 자연유산의 문화적·영적·사회적 가치를 계승하는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지역 자원 관리와 보호의 핵심 인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전통 지식과 지역 생태계 관리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보호지역 관리와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고령층을 자연유산 보호와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핵심 인력으로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같은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보호지역 관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고령층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며, 지역 내 생물다양성 보전과 활용을 촉진하는 등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