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힘을 모아 자연유산
신안, 색(色)에 물들다
'1,004개 섬으로 이루어진 ‘천사섬’ 신안'

머무는 것 자체가 힐링인 곳이 있다. 1,004개 섬으로 이루어진 ‘천사섬’ 신안이다. 신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섬, 가장 넓은 갯벌,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염전 등 풍부한 해양자원을 품고 있다. 그뿐인가! 섬마다 제가끔 다른 색을 뽐내는 문화와 유산을 간직한 보물섬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운 색을 발산하는 섬들의 천국 신안으로 향한다. 신안군은 1004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천사섬’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1,025개 섬이 있다.

소금 생산은 일조량이 많은 4월부터 시작된다



새하얀 소금밭을 캠퍼스 삼아 색을 덧입다, 염전

신안은 섬 부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자그마치 1,025개 섬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옛적부터 섬 주민들에게 생계를 위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염전이었다. 신안은 우리나라 천일염 생산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염전이 광활한데, 그중 국가등록문화유산 신안 증도 태평염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여의도(290만㎡) 면적의 약 1.6배에 달하는 462만㎡에 이른다. 1953년 6·25전쟁 이후 피란민 구제와 당시 턱없이 부족했던 소금 생산 증대를 위해 건립됐다.
염전 초입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유산 신안 증도 석조소금창고는 조성 당시 인근 석산에서 채석한 돌을 사용해세웠다. 하지만 돌로 지은 소금창고는 습도 조절에 취약하므로 1985년 이후 습도 조절은 물론이고 간수 제거에 유리한 목재창고가 들어서면서 자재창고로 쓰이다 2007년 소금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 앞에 매머드 조형물이 서 있다. 매머드가 소금을 찾아 이동한 길을 쫓아 인류도 함께 이동한 ‘매머드 스텝(일명 소금길)’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함초,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가득한 태평 염생식물원




태평염전은 세상을 끌어안을 것 같은 큰 거울이다. 비스듬한 산, 몽글몽글한 구름, 바다색을 닮은 하늘까지 모두 염전에 담겼다. 4월부터 소금 생산이 시작되므로 아직 소금꽃이 피기엔 이르다. 하지만 염부의 이마와 겉옷엔 이미 소금꽃이 폈다. 염전 주변에 소금창고와 염부사 등이 길게 늘어서 생경한 풍경을 자아낸다.
태평염전을 한눈에 살펴볼 요량으로 전망대에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구간이 짧은 덕에 단숨에 오를 수 있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풍경, 한마디로 광활하다.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염전이 한눈에 들어오고, 소금창고와 부속시설 등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다. 함초,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가득한 태평염생식물원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드넓고, 아득한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하다.

01. 소금과 태평염전의 역사가 전시된 소금박물관 02. 태평염전 소금레스토랑의 야외 쉼터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된 증도는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걸까? 한참 기다린 끝에 뉘엿뉘엿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광활한 염전과 갯벌을 배경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백금이 황금으로 변하는 찰나라고 할까? 자연이 주는 장엄한 색의 변화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온다.

03. 갯벌어로 방식으로 낙지를 잡는 주민 04. 신안 해저유물발굴기념비




섬 주변을 둘러싼 잿빛 보물, 갯벌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2008년 갯벌도립공원, 2010년 습지보호지역, 2016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10년 국가습지보호구역, 2011년 람사르습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증도에 신안갯벌박물관이 문을 연 이유다. 이 박물관은 신안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건립됐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국내 최대이자 최초의 갯벌생태교육 박물관이다.
신안의 여러 갯벌에선 오랜 세월 국가무형유산 갯벌어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은 갯벌에서 맨손이나 호미·긁개·가래 같은 손 도구를 활용해 수산물을 채취하는 방식이다. 일대에선 백합, 가리맛조개, 바지락, 동죽조개, 낙지 등이 채취된다. 실제로 갯벌어로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정오에 시작된 작업은 해 질 녘까지 끝나지 않았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낙지를 찾는 건 한마디로 ‘공허’ 그 자체였다.
수십차례 가래질을 했지만, 헛수고였다. 하지만 숙련자는 달랐다. 똑같아 보이는 갯벌에 가래를 깊숙이 박아넣자 낙지가 소스라치게 발버둥질했다. 찰나의 순간, 낙지보다 빠른 고수의 손이 낙지를 낚아챘다. 신기에 가까웠다.

05. 노을빛에 물든 갯벌과 짱뚱어다리



증도에서 갯벌을 탐방하고 싶다면 증도 가까운 화도를 추천한다. 증도와 화도는 썰물 때만 열리는 노두길이 놓여 있다. 원래 돌을 쌓아 만들었던 것이 지금은 1.2km에 이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섬과 섬을 잇는 노두길은 유일한 가교인 동시에 섬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 왔다. 노두길 주변엔 짱뚱어, 고둥, 게 등이 바글바글 부산하다. 또 다른 곳으로 짱뚱어다리도 갯벌 탐방에 좋다. 증도의 명물인 이 다리는 갯벌 위에 놓여 있어서 갯벌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짱뚱어와 갯고랑을 이리저리 오가는 농게, 칠게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해거름엔 환상적인 일몰까지 덤으로 감상할 수 있어 사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짱뚱어다리에서 서남쪽으로 가면 사적 신안 해저유물 매장해역에 이른다. 1976년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가 걸려 올라온 이후 1984년까지 침몰선과 유물 인양 발굴작업이 진행됐다. 그 당시 인양된 무역선은 중국 송·원시대에 항저우를 출발해 일본으로 가던 중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도자기를 비롯해 동전류, 일용잡화 등 총 2만 2,000여 점에 달한다. 해역에 전망대와 신안 해저유물발굴기념비가 있다.

06. 박지도의 보라색 지붕들이 이채롭다



안좌도를 빛낸 화가 김환기와 보라색 넘실대는 퍼플섬
신안군은 관내 마을 모든 지붕 색을 파랑·보라·초록·노랑·주홍색 등 섬의 특색을 살린 색으로 단장하고 있다. 그중 국가민속문화유산 신안 김환기 고택이 있는 마을은 바닷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 듯 파란색으로 칠해 놓았다.
안좌도에서 태어난 김환기(1913~1974) 화백은 박수근, 이중섭 화백과 함께 ‘국민화가’로 사랑받는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세계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전면점화’라는 독창적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김 화백의 위상은 경매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 현대미술 경매 최고가 10점 중 9점이 그의 작품이다. 특히 ‘전면점화’ 기법으로 그린 〈우주〉는 2019년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2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07. 반달을 닮은 반월도의 랜드마크 08. 김환기 화백이 태어난 고택



낮은 돌담에 둘러싸인 고택은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한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김 화백의 생부가 1920년경 지었다는 ‘ㄱ’자형 가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천석꾼으로 알려졌지만, 고택의 규모는 아담하다. 방마다 김 화백의 작품을 전시해 둬 감상할 수 있다. 따뜻한 봄볕에 이끌려 주변의 돌담 산책길을 둘러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09. 태평염전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이 압도적이다. 드넓은 태평염전과 태평염생식물원을 촬영하기에 좋다.
10. 퍼플섬 퍼플교 중간에 있는 주탑을 배경 삼아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두리선착장 앞 드넓은 갯벌 위엔 섬들이 올망졸망 봉긋하다. 그중 박지도와 반월도에 보라색 다리 ‘퍼플교’가 섬과 섬을 연결한다. 다리를 건너면 온통 보랏빛 세상이다. 집은 물론이고 개집·축사·창고·화장실·전화부스·자판기까지 보라색이다. 두 섬은 ‘퍼플섬’으로 불리며 보라색 우산이나 옷을 입으면 무료다. 5월엔 라벤더, 9월엔 아스터가 만개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라색 섬으로 변신한다.
백색 소금, 재색 갯벌, 거기에 비친 황금색 노을빛은 증도를 대표할 만한 색이다. 또한 섬의 특색에 맞는 색을 선정해 알록달록하게 물들인 신안의 마을들은 여행의 재미뿐만 아니라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색이 인간의 심리를 진단하는 도구와 치유에 활용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비언어적 감정이나 생각을 색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심리 분석과 치료에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한 것이 미술치료라면 신안 여행은 빛깔을 잃어버린 내 마음에 나만의 색을 다시 칠하는 치유 여행인 셈이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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