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름다운 탐닉
고려 비색 그리고 조선 순백
'천하제일, 고려 비색'

중국 기술의 도입으로 생산이 개시된 고려청자. 하지만 불과 150여 년 만에 천하제일의 색상으로 탈바꿈했다. 조선 세종 연간 왕실 그릇으로 등장한 백자는 중국, 일본과 다른 조선 백색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천하제일, 고려 비색
1123년 중국 북송의 사신으로 한 달간 고려에 머물다 간 서긍(徐兢)은 이듬해 『선화봉사고려도경』을 편찬하였다. 총 32권 중 기명(器皿) 도로(陶爐)에는 고려청자의 비색을 중국 최고의 청자인 여요(汝窯)와 당대(唐代) 월주(越州) 비색청자에 비견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고려청자의 색상에 반하게 했을까?
10세기 중국도자 기술의 유입으로 탄생한 고려청자는 초창기 중국 청자의 모방 단계에 머물렀으나, 11세기 후반부터 점차 고려화된 청자 생산에 매진했다. 천혜의 청자 원료 산지인 강진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중국식 기다란 벽돌가마를 우리 제작 환경과 기술에 적합한 적당한 크기의 고려식 진흙 가마로 전환해 환원염 소성을 더욱 수월하게 했다. 최적의 철분과 점력을 지닌 강진 점토에 재와 점토를 섞은 투명유를 얇게 시유하여 태토가 훤히 비치토록 했다. 가마가 작은 만큼 신속한 소성과 건조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유약 속에 아무런 빛 반사체인 결정체가 생성되지 않아 유약을 통과한 빛이 태토에 그대로 반사되어, 맑고 투명한 비색을 내도록 했다. 상대적으로 두꺼운 유약을 시유한 중국 여요의 청백색과 달리 은은한 회청색 위주의 비색은 고려청자만의 특질로 13세기 전반까지 지속되었다.

01. 1)국보 청자 오리모양 연적, 12세기, 높이 8cm ⓒ간송미술관 02. 2)보물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비색청자의 예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인 국보 청자 오리모양 연적1)이 있다. 오리 연적으로 불리는 이 청자는 1930년대 도쿄에 살았던 영국인 수장가 J. 가스비의 소장품이었으나, 그가 본국으로 귀국하기에 앞서 이 오리 연적과 아울러 우수한 고려자기 수집품 전부를 간송 선생에게 넘겨 준 것이라 전하고 있다.
이 연적의 형태는 오리가 연꽃 줄기를 입에 물고 있으며, 연잎과 봉오리는 오리의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다. 등 중앙 연잎 구멍을 통해 물을 넣게 되어 있고,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된 작은 마개를 덮을 수 있게 했다. 물을 따르는 수출구는 오리 주둥이의 오른편에 붙어 있는데 현재는 손상되어 원형을 확실히 알 수 없다.
고귀함과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과 가내 평안과 부부 화합의 길상적 의미를 지닌 오리를 사실적으로 결합해 실용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당당한 가슴 양감과 깃털 등의 얇고 정교한 음각이 섬세하고 입체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몸통과 바닥 전체에 유약을 시유했고, 유색은 회청색을 띤 맑은 비색으로 투명도가 높아 오리의 속살이 훤히 비친다. 바닥에는 번조시에 사용된 규석 받침 네 개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의 통통한 몸매를 하고 있으며두 발은 몸통 밑으로 감춰져 있다.
고려 비색청자는 12세기 후반 무신란 이후 상감청자2)의 유행으로 흑백 색상이 추가되어 새로운 폴리크롬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03. 3)백자발, 15세기, 높이 11.6cm ⓒ국립중앙박물관 04. 4)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8세기 ⓒ간송미술관



중국, 일본과 다른 조선백자의 순백
세종 연간 조선 왕실은 백자3)를 왕실 그릇으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청자의 시대에서 백자의 시대로 공식적 전환을 맞이한 것인데, 사실 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있었다. 그러나 고려백자와 조선백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릇이다. 고려백자가 청자 점토와 같은 논밭 지하 1~2m에 있는 점토를 사용하는 반면, 조선백자는 양구와 진주 등지의 높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를 잘게 갈아 원료로 써야 한다. 결론적으로 철분은 고려백자가 많고, 소성 강도는 조선백자가 높아더 백색을 띠고 더 높은 온도에서 번조할 수 있다.
조선백자의 원료는 근본적으로 철분이 많아 중국이나 일본 백자처럼 새하얀 백색을 낼 수는 없었다. 약간의 청색이나 회색을 띠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유약 표면으로 철분이 튀어 나오는 현상을 왕왕 볼 수 있는 것은 조선백자만의 특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강진이나 부안의 단일 점토로 제작하는 고려청자와 달리 조선백자는 여러 지역의 백토를 혼합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백토 채굴과 운송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으므로 시기별로 색상이달랐다. 조선백자는 순백과 회백, 설백, 청백으로 색상이 변화하면서도 성리학적 검박(儉朴, 검소하고 소박함)의 표상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었다.
순백의 조선백자는 수입 회회청(回回靑)을 사용하는 청화의 푸른색과 철화의 갈색, 후기 들어서는 동화의 적색이 더해졌다.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4)은 특이하게도 한 기물 안에 코발트와 산화철, 산화동을 모두 안료로 사용하여 조선 최고의 화려한 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세 가지 안료는 모두 성질이 달라 소성 온도와 가마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제작에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이 병의 주문양은 국화와 난초에 곤충을 더해 초충문을 이루었는데, 문양을 양각한 후 안료를 채색했다. 전체 구도는 둥그런 병의 몸통에 우측으로 비스듬히 올라간 국화문과 좌측으로 가느다랗게 뻗은 세 줄기 난초로 시문되어 있다. 양각의 국화는 붉은 동화로, 국화 줄거리와 잎은 철화(鐵畵), 난초는 청화(靑畵)로 장식되었는데, 그 발색 또한 상당히 선명하다. 초충문은 그 의미상으로 길상문에 속하고 채색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전체 화면구성상 생명이 짧은 곤충이나 일년생 국화가 주문양을 차지한 것은 자손 번영과 영원한 생명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화의 좌측 상단에 적색 동화로 채색된 곤충은 공간의 허전함을 메워 잘 짜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공간을 구획하는 선이나 테두리가 없으며 대형 병임에도 목 위로는 문양이 시문되지 않아 풍부한 여백을 둔 것을 알 수 있다. 푸른빛을 머금은 유백색 유약이 전면에 시유됐고, 몸체 전반에 미세하게 붉은 유빙열(釉氷裂)이 나타난다. 동시대 중국과 일본, 유럽의 화려하고 강렬한 폴리크롬 백자와 다른, 조선만의 절제와 품격 있는 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05. 트렌드와 함께 일상으로 들어온 비색과 순백색(정리 편집실)



트렌드와 함께 일상으로 들어온 비색과 순백색
고려 비색과 조선 순백은 단순한 도자의 색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미감을 담은 유산이다. 오늘날 고려 비색은 한국의 전통성과 세련됨을 상징하는 컬러로 자리 잡아 건축, 공예, 패션디자인에서 활용된다. 특히 고려청자의 은은한 청록빛은 고급 도자 브랜드와 현대적 감각의 인테리어 색감으로 계승되고 있다.
반면 조선백자는 미니멀리즘과 연결된 한국적 미감으로 재해석되었다. 조선의 여백과 절제미는 현대 가구디자인, 미니멀한 도자기, 화이트 톤 인테리어 등에 반영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 백자의 단순하고 속 깊은 멋은 현대미술과 공예에서도 중요한 디자인 언어로 남아 있다. 고려 비색과 조선 순백은 시대를 넘어 동시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빛나는 한국적 색채 유산이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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