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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말해주는 건강검진의 허와 실
'건강에 대한 불안한 마음'

찬바람이 부는 10월부터 12월은 건강검진의 계절이라 불립니다. 국가적으로 건강검진을 독려하는 유일한 나라이면서, 건강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건강검진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건강검진으로 암을 조기에 찾아내어 완치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듣기라도 하면, 그런 믿음은 더욱더 강해집니다. 그런데 건강검진을 무작정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거기에 값까지 비싸다면, 더 좋은 것일까요?



20세기 중반까지의 의학은 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에 집중해왔습니다. 외상을 입었다거나, 이미 진행된 암이나 심장병, 뇌졸중, 결핵, 폐렴 등이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제대로 진단하고 적절하게 치료하는 것은 의학 본연의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요즘엔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심지어 증상이 전혀 없더라도 질병의 조짐을 찾아내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병원의 고객이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증상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건강검진입니다.
건강검진은 고혈압, 당뇨병, 골다공증과 같은 대사성질환뿐만 아니라 각종 암의 조기 진단을 중요시합니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위암의 경우 1기암의 5년 생존률은 85% 이상이지만, 3기암은 50% 정도이고, 4기암은 10%대로 떨어집니다. 검진의사들과 외과의사, 종양전문의들이 암의 조기진단과 치료를 위하여 검진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이유인데요. 암을 조기에 진단하여 적절히 치료하고, 완치하는 것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일까요?
50세 여성 A씨는 유방암 검진(유방촬영술)을 받고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으며, 조직검사를 하여 유방암을 확진 받고 수술을 통하여 완치되었습니다. A씨는 건강검진의 수혜를 입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렇게 건강검진은 이득만 있는 것일까요?
55세 여성 B씨도 유방암 검진을 받았습니다. B씨도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듣고 초음파 검사와 조직검사를 진행하였으며, 다행히 조직검사에서 암이 아닌 것으로 나와서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최종결과가 나오기까지 가슴 졸이며 밤잠을 설치던 B씨는 암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과연 B씨는 건강검진의 ‘혜택’을 본 것일까요? 아니면 ‘손해’를 본 것일까요?



외국의 연구를 보면 10년 동안 1,000명의 여성이 2년마다 유방암 검진을 할 때, 검진 받지 않는 다른 1,000명의 여성에 비하여 유방암으로 사망하는 숫자가 1명 줄었는데(5명과 4명), 그 과정에서 5명은 유방암이 아닌데도 유방암으로 오인하여 수술까지 받았고, 100명은 조직검사를 통하여 유방암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때까지 검진자가 쓴 경제적 비용과 심리적 고통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최초의 유방암 의심 소견을 위양성이라고 합니다. 암을 조기에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이런 위양성은 급격히 증가합니다. 우리나라 건강검진 통계에서도 유방암 의심 환자의 0.6%에서만 최종적으로 유방암을 확진 받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환자 1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수백 건의 조직검사와 수술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유방암 검진을 한다면, A씨보다 B씨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방암보다 더 유명한 갑상선암의 사례도 있습니다. 2001년에서 2010년,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10배 증가한 시기가 있었습니다(4,410명→4만 명). 이는 세계 1위이고, 영국과 일본에 비하여 15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세계 2위인 미국보다도 5배나 높았는데요.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92%가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을 받은 환자의 12.2%에서 부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성대마비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수술 받은 거의 모든 환자들이 평생 갑상선 호르몬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갑상선암 조기 진단에도 불구하고 갑상선암으로 사망하는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갑상선암 환자의 1/10보다 적은 영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인구 당 갑상선암 사망자는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갑상선암 환자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갑상선암 진단 수가 증가한 것입니다.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 이상의 사람들이 조직검사를 받았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됩니다. 암의 조기 진단의 목적은 더 많은 암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갑상선암 조기진단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교적 작은 갑상선암은 그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낮습니다. 갑상선암으로 사망하지 않은 사람을 부검할 때, 30% 이상에서 미세한 갑상선암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굳이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갑상선암 조기검진은 권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의사들이 문제를 제기한 2014년 이후, 갑상선암 환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전립선암 사례도 있습니다. 10년 동안 PSA수치로 전립선암 선별검사를 1~4년 주기로 한 55~69세 사이의 남성 1,000명 가운데 1명이 전립선암으로 사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는데(이득), 조기검진에도 불구하고 전립선암으로 4명이 사망했으며, 선별검사로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110명 가운데 최소 50명 이상이 감염이나 발기부전 등의 수술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100~120명은 조직검사결과 최종적으로 전립선암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즉, 위양성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겪었을 불안과 경제적 비용은 물론이고 감염이나 통증, 출혈 등의 부작용도 있었을 것입니다. PSA수치 기준을 낮추면 낮출수록, 이런 비용은 더 증가합니다.
이득에 비해 많은 비용이 지불되는 몇 가지 암을 사례로 들었지만, 모든 암의 조기진단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위암이나 대장암, 자궁경부암 같은 경우에는 조기진단의 혜택이 검증된 경우에 해당하며, 간암이나 폐암은 특정 집단에서는 검진의 혜택이 있습니다. 이렇게 무증상의 성인이 선별검사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연령대가 존재하는데요. 다음의 표를 참고하시고 각 검사의 검진대상과 연령대를 확인하여, 그 시기에 검사를 받으실 것을 권고 드립니다.
건강검진이 암을 줄여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암을 찾아낼 뿐인데요. 찾아낼 필요가 없는 암까지 찾아내기도 합니다. 위양성인 경우도 많으며, 확진이나 치료의 과정에서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턱대고 검진을 많이 받는 것이 반드시 내 건강에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건강검진 이전에 암을 유발하는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주기적으로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꼭 필요한 검사만 적절한 시기에 받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건강검진을 받았다면, 반드시 그 결과를 주치의와 함께 상의하도록 해야 합니다. (글. 정명관(가정의학과 전문의 정가정의학과 원장))

EDITOR AE안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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