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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 문화와 그 속에 나 그리고 꿈

20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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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 문화와 그 속에 나 그리고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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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문화가 있다. 예로부터 특정 인종이나 국가, 지역,직업에서 파생되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구(舊)문화와, 현 세대에서 새로이 빠르게 형성되고 빠르게 사라지는 다양한 신(新) 문물의 문화가 있다.
    그 빠른 속도에도 사라지지 않고 꽤 길게 유지되고 있는 문화 중 하나인 키덜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키덜트란,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의 감성을 가진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 인형과 로봇을 가지고 놀며 모으는 어른 일명 어른 아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좀 더 쉬운 설명이 될까?




    예전엔 성인과 장난감을 엮으면 부정적 시선을 동반한 정신 퇴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하지만 현시대에서는 학생, 회사원, 중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연령층이 대놓고 즐기는 놀이문화로 발전했다. 그 특이하지만 특별한 문화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를 풀어 본다. 나 역시 키덜트다. 서른이 넘어선 지금도 마음을 뺏는 토이(장난감)나 멋들어지고 오래된 소품이 있다면, 삼시 세끼를 거를지언정 모으려 하고, 지역이 어디든간에 축제, 벼룩시장, 전시, 외국 가리지 않고 열심히 찾아가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게다가 이제는 직업도 소규모 키덜트 숍 대표, 공예가에서 토이를 만드는 일까지 하게 된 나는 부정할 수 없는 키덜트라 생각한다. 내가 키덜트가 된 것은 놀랍게도 가족에 의한 영향도 꽤 크다. 어릴 적부터 장난감을 좋아했고 티브이에서 로봇 만화가 나오면 그 장난감은 무조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욕심이 참 많은 꼬마였다. 부모님과 친척 삼촌 이모할 거 없이 손을 잡아끌어 동네 문방구로 거침없이 향하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그도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가족 중 어느 한 분 크게 나무라거나 크게 혼내지 않고 사주시던 기억이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도 초반 당시 티브이에서 상영했던 만화 속 대형 로봇 장난감의 가격은 못해도 3~7만 원이었다, 그때 당시엔 만 원도 꽤나 큰 돈이었다. 친척들이 집에 오는 날이나 명절,생일엔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날이었다.얼마 전 지금은 타국에 사시는 나의 작은 외삼촌을 오랜만에 만나 뵙고 이야기하던 중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꼬마였을 때 문방구 가자고 시도 때도 없이 졸랐을 때마다 삼촌께선 별생각 없이 몇백 원 몇천 원짜리 장난감이나 하나 사주시려다 결국 나의 조름에 못이겨 매번 생각했던 금액20~30배 이상의 돈을 쓰고 나오셨다며 그때마다 얼마나 진땀을 뺏는지 너는 모를 거라며 크게 웃으셨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겐 추억의 감성이 담긴 물건 혹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재산이 된다

    지나고 보니 좋았던 기억이셨을까? 그때문에 수염이 덥수룩한 다 큰 털보 어른이 된 나에게 이제는 중년이 되신 외삼촌은 지금도 몇 년에 한번 만날 때마다 특별한 선물은 잊지 않고 가져다주신다. 최근 만남에 받은 것은 살고 계신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놀이 소품인데 동물의 뼛조각을 다듬어 말로 써서 노는 일종의 보드게임 소품을 선물해주셨다, 한국에 들어올 때면 너에게 꼭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감사한 말씀과 함께.
    또, 얼마 전 큰 이모님께선 어릴 적 내가 가지고 놀던 일본에서 사온 무사 캐릭터 모양의 탁상시계를 거의 25년 만에 찾아 주셨을 때는 정말 복권에 당첨된 듯 기뻤다. 추억의 감성이 담긴 물건이나 의미가 있는 선물은 키덜트들에겐 돈 이상의 값어치가 담겨 오래오래 간직할 소중한 재산이 된다. 기꺼이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셨던 일들 하나하나가 모여 나의 키덜트 성향의 절반 이상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큰 셈이다.
   욕심쟁이였던 꼬마는 성인이 되었어도 욕심이 많다.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많은 일을 했다. 아니 경험과 잘 할 수 있는 일보다 모험적이고 재밌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욕망이 늘 가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기업부터 작은 회사, 이벤트 업과 각종 아르바이트,새벽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의류를 파는 일을 거쳐 가죽공예를 하고 있을 무렵 디자인캐릭터상품을 제작 하고 있는 여자친구와 함께 작업실을 얻었다. 1년 정도 매일 같은 패턴의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뭔가 재미난 일을 만들고 싶어 고민을 했고 결국 우리 두 사람 머리에서 나온 답은 우리와 같은 키덜트들의 아지트, 그리고 재미있는 문화를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였다.
    우리가 모아둔 전재산을 탈탈 털고 대출까지 받아 가게를 오픈했을 때의 일이다. 사실 서울에만 해도 규모가 크고 잘나가는 키덜트 숍들이 아주 많고 그 이상으로 즐기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이 아주 많다. 우리도 여기서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하루에도 두세번씩 듣는 질문은 "대체 여기가 뭐 하는 곳이에요?" "이런 게 팔려요?"라는 질문과 함께 이해가 안 간다는 냉담한 눈초리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한시간 반 거리지만 이런 문화 자체는 그곳과 완전 달랐다. 참 난감했고, 속상했지만 낯설어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좋아하는 문화를 알리고 싶어 만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애써 웃으며 두서없는 말로 설명하기를 수십 번.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반응과 질문을 던졌던 손님들도 방문 횟수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소문을 듣고 온 손님 중에서는 진열된 장난감들을 보며 "나도 어렸을 때 이런 거 참많이 모아두곤 했는데"하며,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늘어가는 단골손님들은 방문은 적어도 한 시간 이상 관심사나 재미있는 문화를 주제로 소통하고, 지인과 가족, 친구들을 데리고 와 직접 설명 까지 하는 모습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며 한층 더 성장해 감을 느꼈다. 나는 문화의 선구자는 결코 아니다 무수히 많은 키덜트 중 그 문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게 느낀 것은 문화도 전염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키덜트병을 앓는 세상을 오늘도 꿈꾼다. 구(舊) 문화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신(新) 문화를 추구하며, 장난감 모으기로 시작해 직업과 사람을 모으고 원초적인 즐거움, 재미. 나아가 이제는 당신들의 모든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들 마저 모으고 싶은 나는 욕심쟁이 키덜트 컬렉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