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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의 해 뜨는 이화세상

2018-07-06

라이프가이드 여행


새날의 해 뜨는 이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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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멧돼지가 은혜 갚은 은적산

    해가 뜨기 전, 여명에서 붉은 기운이 느껴지기 직전의 시간. 하늘이 아주 신비한 푸른빛으로 빛날 때가 있다. 그 푸른빛의 시간은 태초의 하늘로부터 번져온 신화의 시간, 이야기의 시간이다, 해맞이 명소로 유명한 은적산에도 신비로운 이야기한 자락이 전한다.
    신라 혜공왕 때 한 노승이 길을 가다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산에서 흘러온 온화한 기운과 들녘에서 뻗어나간 살기가 서로 맹렬히 싸우는 것이었다. 스님은 곧 악을 물리치는 경문을 외워 싸움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이후 산길을 가다가 피곤이 몰려와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는데,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와 스님을 밀쳐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소나무에서 커다란 독사가 떨어졌고, 멧돼지는 그 독사를 물어 죽인 뒤 유유히 사라졌다. 스님이 뒤를 쫓아가 보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온화한 광채를 띤 멧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있다가 예를 표했다. 그 멧돼지는 앞서 스님의 경문에 도움을 받아 사악한 뱀을 물리친 영물이었다. 스님은 비로소 멧돼지가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을 구해주었음을 짐작했고,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두고 신비로운 멧돼지가 살았다 해서 저산(猪山), 혹은 멧돼지가 은혜를 갚았다 해서 은적산(恩積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은적산 일출 즈음


사라진 고읍의 수호터 저산성터와 봉수대

    은적산은 한남금북정맥에서 가지를 친 팔봉지맥(단군지맥)이 피반령, 봉화봉을 거쳐 팔봉산에 이르고 다시 서쪽으로 낮아져 평지를 흐르다 솟아오른 것이다. 해발 206m의 낮은 산이지만 사방이 한군데도 막히지 않아 정상에서의 시원한 풍경이 일품이다. 맑은 날이면 미호천 건너 조치원과 오송이 보이고 동북으로는 부모산이, 동남으로는 팔봉산 능선이 건너 다보인다. 사방이 트인 은적산 정상부는 청주 서부의 성터였다. 삼국시대에는 이곳에 저산성(猪山城)이 있었고, 고려를 거쳐 조선 세종때까지만 해도 봉수대가 있어 청주 것대산 봉화대와 연기 용수산 봉수대로 연결되는 봉화를 올렸다 한다. 추정하기로 백제시대 청주와 금강을 잇는 옛길을 지키기 위한 산성이 있던 곳인데, 점차 산성은 허물어지고 봉수대 기능만을 하며 조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저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주 서쪽 30리에 저산성이 있으며 석축의 둘레가 545척이고 성안에 우물이 있었으나 폐성되었다고 적었다. 그런가 하면 1860년대 지리서인 《대동지지》에는 저산성이 구라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의 읍邑이었다고 했으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에는 저산성 인근에 저산역이 있어 벼슬아치 30인, 노비 10명, 말 10필이 속해 있었다고 전한다.


01.단군성전 단군상  02.단군성전 홍익문  03.단군성전 봉수대


홍익인간 이화세상의 꿈 단군성전
    궁현리 마을에서 은적산 정상까지 산책하듯 길을 오른다. 길어야 30분 안쪽의 순한 산길이다. 정겹게 늙어가는 노부부처럼 나란히 선 장승 앞을 지나면 마침내 정상부에 도착한다. 예전 저산성이 둘러져 있던 품안엔 지금 단군성전이 터를 잡았다. 그렇다면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저산성의 흔적이 단군성전으로 인해 훼손된 것일까. 여기엔 상처 입은 역사의 이야기가 아프게 새겨져 있다.
    전국 유일의 산 정상부에 위치한 단군성전은 은적산뿐인데, 산 정상부의 단군 유적으로 마니산의 참성단, 태백산의 천제단 등이 있으나 모두 제단만 있을 뿐, 산꼭대기에 전각을 지은 것은 은적산이 유일하다. 은적산 단군성전에서는 매년 세 번의 큰 행사가 열리는데, 1월 1일 해맞이 행사와 어천제(음력 3월15일), 개천제(양력 10월 1일)이다. 자동차로도 정상까지 갈 수 있으며 이화정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답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천황숭배를 강요하는 신사를 이 땅에 1,141개나 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남산 국사당 자리에 신궁을 건립한 것인데, 청주에는 1914년 당산에 처음 신사를 지었고 이후 은적산 정상에도 신사가 들어섰다. 일제가 신사를 지은 자리는 그런 곳이었다. 조선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당산이나 산신제를 지내던 곳, 사직단이 있던 곳처럼 우러러 보이는 높은 장소들이었다. 예부터 길지로 꼽혔던 은적산 역시 조선의 민족혼을 누르기 위한 신사를 들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저산성의 자취는 일제의 신사 건립과 함께 지워지고 봉수대의 흔적도 사라져갔다. 광복을 맞이하자 전국에서 신사를 철거하고 불태우는 일이 벌어졌다. 은적산 신사도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민족혼을 다시 세우자는 뜻으로 단군제단을 만들었다. 이어 단군비와 애국지사충혼비를 세웠고, 단군전도 지었다. 이 일에 독립운동가 김재형 선생이 앞장을 섰고, 신백우 선생, 의병장 한봉수선생 등 지역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상처의 자리를 회복의 자리로 바꾸는 일 또한 이화理化세상으로의 길이 아닌가. 오늘날, 은적산 단군성전은 청주시의 다양한 행사에 성화를 채화하는 자리기도 하다.


이화정에서 바라본 풍경


마음에도 새날의 해 뜨는 이화정

    맑은 날 은적산에서 내려다보면 들과 마을을 잇는 길들이 선명하다. 멀리 낮은 산들이 잔잔하게 출렁이고 천지간에 이화(理化)세상의 꿈이 아늑하다. 이화세상이란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재세이화 사상이 구현된 이상적인 세계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진리대로 이치대로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단군 이래로 모두가 기다린 꿈같은 세상이리라. 은적산 이화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해맞이 사진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새날의 해가 떠오른다. 우리가 ‘개천開天’이라 말할 때의 하늘이 어찌 눈에 보이는 하늘이기만 할까. 사람 안의 하늘, 내 안의 하늘을 열어 함께 바라보는 자리가 이곳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