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말은 존재의 집
'글. 유병숙'

미쳤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신의 외국 여행기를 중심으로 패널들과 방담을 나누고 있었다. 현지의 문화 체험을 소개하던 중 한 식당에 들러 햄버거를 주문하였다. 식재료를 겹겹이 넣은 두툼한 햄버거가 화면에 나오자 패널들이 이구동성으로 ‘미쳤다’를 외쳐댔다. 동시에 ‘美쳤다’ 자막이 빠르게 지나갔다.
생경한 언어 조합이 눈에 거슬렀다. 시청 중에 핸드폰을 열고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예능감 美쳤다’, ‘커플 케미 美쳤다’, ‘연기 美쳤다’, ‘분위기 美쳤다’, ‘라면 맛 美쳤다’, ‘캠핑 코스 美쳤다’, ‘의리까지 美쳤다’, ‘강릉의 정자 美쳤다’ 등등에 심지어는 ‘산에 美쳤다’는 책 제목까지 있었다. 이는 우리 언어 사용 용법이 아닌 억지로 짜맞춘,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언어 조합이다. 어쩌다 ‘美쳤다’라는 말이 뛰어난 기량 혹은 기쁘다, 멋지다, 아름답다를 합친 만능어가 되었을까?
최근 한 라면 광고에 ‘미쳤네’란 말이 등장했다. 절로 ‘美쳤다’가 떠올려졌다. 그러나 재차 확인해 보니 합성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이었다. 그새 유행어에 감염되어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미쳤다’나 ‘미쳤네’는 통상적으로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언어다. ‘美쳤다’라는 합성 신조어에 편승해 남발되는 어휘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요즘 영상매체는 신조어 양산에 앞장서고 있는 듯하다. 한 예로 ‘美쳤다’에 질세라 ‘찢었다’는 말도 자주 쓰인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광목 끝을 가위로 조금 가르고 손으로 쫙 찢는 모양새를 연상했다. 그러나 매체에 노출된 찢었다는 ‘대단했다, 굉장했다’를 함의한다. 무대나 분위기를 압도했을 때 또는 무언가를 훌륭히 해냈을 때 쓰인다. 어마어마하다, 놀랍다를 뜻하는 ‘쩐다’ 보다 더 자극적인 말이다. 예컨대 ‘비욘세가 무대를 찢었다’, ‘당의 한복 찢었다’ 등의 표현이 눈에 띄는가 하면 ‘포스 찢었다, 겔포스 엘’, ‘딤채 찢었다’처럼 광고로도 활용되고 있다.
‘와, 하늘 美쳤네! 어, 진짜 찢었네’와 같이 美쳤다와 찢었다를 짝꿍처럼 쓰는 걸 보면 이 두 말이 요즘 신조어의 대세인가 보다. 이에 ‘킹 받네’라는 말까지 붙으면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열 받는다는 말 앞에 왕을 뜻하는 킹을 넣었다. ‘왕 열받는다’ 즉 엄청 화났다는 뜻이란다. 사람살이가 어려울수록 이에 상응하는 말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데다 험악하기까지 한 언어사용은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신조어(新造語, Neologism)란 새로 만들어진 단어 및 용어 가운데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은 말을 뜻한다. 음식을 소재로 다루는 방송에서 자주 사용하는 ‘味쳤네’처럼 한자와 합성한 언어의 탄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행히 일부 예능 프로그램에 올라온 ‘美쳤다’, ‘死을 맛’과 같은 왜곡된 표기는 한글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시정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행어를 막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의 인격 형성에 언어가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언어는 의식을 반영하고 사람됨을 형성하며 나아가 정신세계를 지배하기도 한다. 속어, 욕설, 비속어 등 거친 말을 쓰는 이들일수록 대체로 내면이 황폐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법정 스님 또한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이 맑고 고요하면 말도 맑고 고요하게 나온다. 생각이 야비하거나 거칠면 말도 또한 야비하고 거칠게 마련이다. / 그러므로 그가 하는 말로써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 그래서 말을 존재의 집이라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이 씨가 된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는 등등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나를 돌아보고 말 단속에 나서게 한다.
통통 튀는 신조어가 때론 말의 재미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한 재치 있는 언어는 바쁜 일상의 피로를 덮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신조어가 남발된다면 오히려 심신의 고달픔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내게 된다. 작금의 거센 신조어, 합성 신조어 현상이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언어 자정을 위해 뜻있는 이들이 나서곤 하지만 매번 구두선에 그치고 만다.
신조어가 날마다 태어나고 있다. 기왕이면 따뜻하고 선한 언어의 탄생을 희망해본다. 영혼을 정화하는 언어, 어려운 현실을 위로하는 언어가 그리운 요즘이다.

EDITOR 편집팀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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